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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오는 이야기

암행어사와 역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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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수석넷 댓글 0건 조회 211회 작성일 17-07-1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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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백30여년전,
그러니까 1850-60년도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갖가지 민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어려운 난세였다.
비분과 강개가 서린 격조 높은 시를 잘 쓰기로 유명한 강위(姜瑋)같은 사람은 자칫 무서운 소용돌이에 말려들지도 모를 격문(檄文)을 지어 달라는 간청을 자주 받고는 어찌 할 수가 없어 무주 구천동(九千洞)이나 제주도 등지의 깊은 산골이나 외진 곳으로 피해 다녔다.
술과 시가 아니면 삶의 의미를 갖지 못할 정도로 술과 시를 좋아한 그는 성격이 호탕하여 젊은 제자들과도 어울려 술잔을 자주 기울였는데, 그의 제자로는 종두법을 최초로 소개한 지석영의 형의 글씨, 그림, 시에 능한 지운영(地運永)과 명문대가 출신으로 일찍부터 벼슬에 올라 한때 암행어사(暗行御史)도 지냈던 이건창(李建昌) 등의 훌륭한 인물들이 있다.
이건창은 젊은 나이에도 품행이 단정하고 공과 사를 분명히 가릴 줄 아는 깨끗한 인품을 지니 사람이었기 때문에 임금까지도 신임을 하여 그를 암행어사로 제수시켜 어명을 내렸다.
어사 이건창에게 내려진 어명은 좀 특이했다. 어사라 하면 대개 원성을 사고 있는 지방관원들이나, 특정한 사건으로 백성들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해결사로 나서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건창에게 맡겨진 어명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의 경상도 지방 어느 역학사(易學士)가 무엇이든지 귀신같이 잘 맞추어내 많은 백성들이 노력보다는 일확천금의 기회만을 노리고 태만한 생활을 하게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 역학사를 혹세무민(惑世誣民)으로 규정짓고 일단 벌을 주기 위해서 현지로 내려가서 암행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건창은 허술한 농사꾼의 옷차림으로 문제의 역학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소문 그대로 문 앞에는 끝이 안 보일 정도의 많은 사람이 모여있어 거의 한나절을 기다리자 비로소 차례가 왔다.
역학사는 허름한 거적때기를 깔고 앉아 있었는데, 시커멓게 늘어뜨린 긴 머리는 그의 무릎에 걸쳐 있었으며, 손톱은 몇 년이나 깎지 않았는지 손가락 길이와 비슷했고, 얼굴 역시 파리 같은 날것들이 기어 다니면 흔적이 날 만큼 때가 절어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어두컴컴한 곳에 앉아 있어도 눈에서는 누구라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광채가 번뜩이고 있었다. 다행히, 이건창 암행어사의 차례가 돼 역학사 앞에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역학사는 이건창 어사를 한참 주시하더니 향을 피워 올리고는 산통을 흔들어 주역팔괘를 뽑아보고, 다시 그 괘를 백지에 써놓고 한참 주시하더니 앞으로 구부리고 있던 상체를 뒤로 갑자기 젖히면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몹시 궁금한 이건창은 아무 말도 없이 역학사 눈빛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음 속으로, '이놈 만약 정단(正斷)이 틀리기만 해봐라. 당장 압송하여 옥살이를 시킬 것이니라' 하고 다소 틀렸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의연하게 앉아 있던 역학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휭하니 가버리는 것이었다.
어사는 기분이 좀 상했지만, '이놈의 영감탱이, 좀더 두고 봐라. 감히 암행어사를 몰라봐.' 그런 저런 생각으로 한참이나 앉아 있는데, 역학사가 옆구리에 낯선 돗자리를 끼고 와 이건창을 툭툭 치면서 돛자리를 깔테니 자리 좀 약간 비켜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괘씸하게 생각하던 차에 사람 무시하는가 싶어, '내가 암행어사요.' 하고 그 자리에서 당장 꽁꽁 묶어 옥에 처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돛자리를 다 깔고 난 역학사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돌려보내더니, 이건창을 향해서 절을 크게 올렸다.
"어사님 먼 길 오시느라고 큰 고생하셨습니다." 라고 응대를 하는 것이었다.
하도 엉겹결에 대하는 일이라 어사 이건창은 "예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보다시피 농꾼 아닙니까?" 하고 역학사를 떠보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어사 이건창이 항시 차고 다니는 어사패(御使牌)가 언젠가 돌 위에 떨어져 약간의 흠이 생겼는데, 그런 사실까지 알아 맞추는 것이었다.
속으로는 몹시 놀라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 땅의 흙을 밟고 사십니까." 그러자, 역학사는 껄걸 웃으며, "그러시다가 저 유명한 신라시대 선덕여왕, 도선대사, 무학대사, 하륜(河崙) 대감들까지도 욕하시겠습니다.
그 분들은 다같이 먼 앞날을 훤히 내다보는 선각자요, 지혜 총명한 분들이었지요. 그러나 임금이 있는가 하면 중도 있지를 않습니까? 만약 어사님 생각대로라면 앞일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악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알면 알수록 더 자중하는 게 선각자의 몸가짐입니다.
중국의 열자가 말했던 '귀먹고 말 못하는 소경이라도 부자로 잘 살게 되는 것과 지혜 있고 총명해도 못사는 까닭은 이미 하늘에서 정해준 운명'이라고 지적했소." 역학사의 이야기는 어디서나 쉽게 들어보지 않은 말들이었다.
두 사람이 자리를 옮겨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이건창 어사가 어떤 임무를 맡고 그곳까지 왔는가를 이야기 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게 되었고 이건창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역학사에게 자문을 구하곤 했다. 그러니까 이건창 어사는 인간 누구에게나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굳게 믿었고 자신의 생년월일 등에 기준한 사주(四柱)를 뽑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다가올 몇 달 동안의 것을 날짜 별로 하루하루 뽑아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러자 역학사는 붓을 들어 열심히 날짜에 따라 앞으로의 일어날 일들을 적더니 이상하게도 두 달까지만 뽑아주고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데 헛수고 할 게 뭐 있소이까?" 라며 막무가내로 완강히 거절했다.
영문을 모르는 이건창 어사는, "아, 형님! 우리가 의형제를 맺은 터인데 그런 부탁도 아니 들어 주시면 정말 서운하외다." 하고 정색을 했다. 그래도 역학사는 말없이 앉아만 있어 이건창을 더욱 궁금케 했다.
무슨 이야기라도 좋으니 얘기나 좀 해 달라고 어린애처럼 떼를 쓰는 이어사에 역학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다음 달 그믐에는 죽어. 그런데 더 이상 사주를 뽑아서 무엇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은 들은 이건창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충격적인 말이었다. 더욱이 역학사의 예언은 백발백중이라 차라리 틀렸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낙심천만하여 넋을 놓고 앉아있는 이건창 어사는 잠시 전 만 하더라도 한나라의 임금으로부터 어명을 받은 일국의 당당한 어사였으나 죽음이 다가올 거라는 말 한 마디에 무척이나 허망하여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듯하고 인생이 죽음 앞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새삼 깨달았다. 그러나 이대로 죽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의형(義兄)인 역학사에게 죽음을 면할 수 있는 비방(秘方)이 없을까 하고 애원하듯 매달렸다.
그러자. 역학사는 눈시울을 적시며 이렇게 설명했다.
"다음 달 그믐께, '어느 산적 떼들을 잡으라'는 어명이 있게 되는데, 죽음의 시기는 바로 그날이 될 것이나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도 있다네
."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역학사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어사는, "아니? 그게 정말이요. 살 수 있단 말이요?" 하고 반문하자. 역학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건창에게 용기를 주었다.
근심 속에 싸여 한 달여를 보내고 그믐께가 되었는데, 언젠가 역학사가 예언했던 대로, '지금 온 나라 곳곳을 종횡무진하며 날뛰고 있는 도적떼들을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잡아내라.'는 어명이 내렸다.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하자, 역학사는 이건창 어사에게, "대체로 어떤 경우든 위급한 상황에서는 술과 여자를 피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번 그믐에는 양기(陽氣)가 쇠약해지고 음기(陰氣)가 성해지기 때문에 여자를 가까이 하면 살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마침내. 그믐이 다가와 역학사가 시키는 대로 홀홀단신 도적의 소굴로 들어갔다. 가서 보니 심산유곡에 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도적들의 소굴은 웬만한 관군으로도 그들과 대적하기는 힘들 것으로 여겨져 일단은 모든 것을 역학사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허름한 나무꾼차림으로 적촌(賊村)에 들어서자. 어디서 어떻게 보고 쫓아왔는지 도적떼 십여 명이 그를 에워싸고서 그중 턱수염이 보기 사납게 나고 눈썹이 옛날 장비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친 자가 다가와 이건창 어사의 멱살을 틀어 잡고는, "야! 이놈. 여기가 어디인줄 알고 들어와!" 하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이건창은 시치미를 딱 떼고 "왜유우, 전, 나무하러 여기 왔는데요." 하자, "나무꾼은 손마디가 이렇게 곱지 않아." 라며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게 이건창은 상투속에 조심스럽게 숨겨 놓은 암행어사 마패 걱정되었다. '만약 저 도둑이 머리체라도 잡고 내동댕이치는 날에는 끝장이다.'는 생각에 여간 마음이 조마조마한 게 아니었다.
멱살을 잡고 있던 도적은 곁에 있는 부하들에게, "이놈을 형님이 내일 오시니까. 그때까지 동쪽에 있는 지하감방에 쳐 넣어라." 이건창 어사를 발로 걷어차며 땅바닥에 쓰러뜨려 버렸다.
이건창 어사는 머리를 다쳐 아픈 척하면서 상투 속의 마패를 아무 이상이 없나 만져보면서 다시 한 번 갈무리를 잘했다. 이렇게 해서 이어사는 도적들에 의해 지하감방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자. 한 여인이 밥을 가지고 왔다. 도적 소굴에 있는 여자치고는 미인이고 언행이 바른 여인이었다. 밥이라고 해야 큼지막한 바가지에 담아내 온 시커먼 꽁보리에 다 썩어가는 생선 한 토막이었다.
여인은 어사에게, "엣소, 밥 여기 있수." 하고 바가지를 던지듯이 내밀고 휭 나가버렸다. 감옥 안에는 수 년, 수십 년 된 사람들이 십여 명 있어 마치 피를 먹고 산다는 흡혈귀나 지옥에 떨어진 사자(死者)들처럼 아비규환의 참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건창 어사는 그 사람들에게 아까 그 여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여자는 한때 남편과 이곳에 잡혀왔는데, 여자는 워낙 미인이라서 도적 두목이 애첩으로 삼아 살고, 남편은 이곳 지하 감방에서 얼마 전 죽었소이다." 하는 것이다.
이건창 어사는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썩은 생선 토막에 보리밥을 먹을 수가 없어 바가지만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동안 전에 들어왔던 죄수들이 구미 당기는 표정들이라서 그들을 주려고 밥이 담긴 바가지를 드는 순간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비록 희미한 기름불빛이지만 썩은 생선 위에 벼알, 즉 뉘세 개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전에 역학사가 여자만 가까이 하면 살 수 있다는 기억이 퍼뜩 떠올라 좀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생선을 네 토막 내서 그대로 가지고 있고 밥만 죄수들에게 나눠주었다.
물론 생선 위에 놓인 세 개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훤히 알고 있었고 아까 그 여인이 또 올 것이란 것도 역시 훤히 알고 있었다.
죄수들은 서로 다투어 순식간에 보리밥을 해치워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인이 다가와 바가지를 달라고 하자. 이건창 어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네 토막 된 생선을 다시 그 바가지에 담아 주었다.
그러자. 여인은 고개만 끄덕대며 뭣인가 알아 차린 듯한 눈치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은 먼저 질문을 던진 사람은 여인이고 그 질문에 답한 사람은 이건창 어사였기 때문에 답을 바라고 있는 쪽은 역시 그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들 둘 만이 통하는 대화이지 보통사람으로서는 손에 쥐어줘도 모를 무언(無言)의 대화였다.
맨 처음 여인이 뉘 세 개를 나란히 놓았던 것은, "당신은 누구세요?" 란 뜻으로 방언에 따라, "뉘세요." 로 먼저 그 여인이 이건창 어사에게 던진 질문인데, 이건창 어사는 곧바로 그 뜻을 알아차리고, "나는 바로 암행어사요." 란 뜻을 고기 네 토막(魚四)으로 나타냈던 것이다. 그러니까 비록 그 글자는 달라도 어사(御使)라는 말소리 만큼은 알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건창 어사는 대화가 통했기 때문에 그 여인이 또 올 것이라 믿고 은근히 기다렸다. 여인은 삼경이 다 될 무렵 지하감방으로 이건창 어사를 다시 찾아와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라는 눈치였다. 그러자. 이건창 어사는 "두 마리의 개가 두 산기슭에서 말을 하지요." 라고 간단하게 암시를 주었다.
그러자. 여인은 알았다는 듯이 감옥문을 지키는 도적들과 다른 도둑들에게 두목이 도적질해서 갖다 준 진귀한 물건들을 주며 이건창 어사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다.
이건창 어사가 말했던, '두 마리 개가 두 산기슭에서 말을 한다' 는 의미는 감옥문을 나가고 싶다는 뜻으로 갇힐 옥자(獄字)양쪽에 개견(犬)변이 있고 가운데 말씀 언자(言字)로 구성되어있는 옥(獄)을 풀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며 두 산기슭이라는 것은 산이 두 개 겹쳐 구성된 나갈 출자(出字)를 나타낸 것으로 이 두 글자를 모두 합해보면 옥출(獄出)이 되는 것이었다.
감방을 나와 그 여인과 대화를 시작한 이건창 어사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고 여인으로부터 도움을 청했다. 여인 역시 이곳을 나가려고 수년을 두고 기회를 매번 보아왔지만, 사람들마다 여인이 암시하는 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실의에 빠져있던 터인데, 다행히 이건창 어사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여인은 그런 얘기를 쭈욱 설명해 주었다. 여인은 전 남편을 잃고 비록 두목의 애첩이 되어 있으나, 항시 이곳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며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그러면서 다음날 오후 늦게 두목이 도착하므로, 우선 어사는 여인 복장으로 하고 내어준 말을 타고 가서 토벌병을 데리고 오라는 말을 했다. 그러는 동안 "두목이 오면 낮에 라도 동침을 하자고 칭얼댈 거예요. 그러면 미리 독약을 넣은 술상을 봐 두었다가 술 한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자고 하면 동침하고픈 생각에 그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예요." 라고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건창 어사는 그 여인의 옷으로 여장을 하고는 말을 달려 인근에 있는 모든 관군에게 동원령을 내려 연합전선을 세우는 사이 도적 두목은 과연 오후 늦게 그 지하소굴에 도착하였다.
다른 때보다 유별나게 예뻐보이는 여인을 보자. 도적 두목은 마음이 심히 동하여 여인을 끌어 자신의 품속에 꼭 껴안으려고 했다.
여인은 재빠른 동작으로 술부터 마실 것을 회유하며 온갖 애교를 다해 교태를 부렸다. 두목은 몸이 달아오르자. 술을 큰 뚝배기에 따르라고 하더니, 꿀컥꿀컥 마시고는 이내 앞으로 곯아 떨어져 버렸다.
그러자. 여인은 이틈을 타서 두목의 겉옷을 벗기고, 속옷만 입힌 채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이불 속에 눕혀놓고는 여인 자신도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끔 속살이 보일 듯 말듯한 훗치마만 걸친 채, 농염한 모습으로 두목의 옆에 누웠다.
부하들은 어사가 없어진 것을 눈치채고 두목을 만나려 몇 번씩 왔지만, 두목은 물론 여인이 속옷 바람으로 있으니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말을 건네지도 못한 채 돌아가기를 몇 차례 하는 동안 여인은 어사가 관군을 어서 이끌고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만약. 두목이 자신이 탄 독약을 먹고 쓰러져 있는 것을 부하들이 눈치라도 채는 날에는 자신은 물론 암행어사, 그리고 관군까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온몸이 바짝바짝 조여지고 소름이 끼쳤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밤이 깊어졌을 때, 여인은 두목의 명령이라면서 날이 밝을 때 까지 마음껏 술을 마셔도 된다는 명을 내렸다.
그러자. 삽시간에 난장판으로 변해버린 도적들의 소굴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날이 밝아 아침이 되자, "암행어사 출두야" 하는 함성과 함께 이건창 어사를 선봉장으로 한 관군이 밀어닥쳤다. 금방 쑥대밭이 된 도적소굴에서 그렇게 백성을 괴롭히던 도적떼들은 일망타진이 되었다.
그 공로로 이건창 어사는 더 높은 벼슬을 얻었고, 여인은 이건창의 애첩으로, 그리고 죽음의 운명에서 구원해 준 역학사와는 더 깊은 의형제로의 정을 나누게 되었으며, 이건창 어사는 그후부터 인간에게는 반드시 운명이란 틀이 있다고 굳게 믿고 주역팔괘(周易八卦)에 대한 신비성을 풀어보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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