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계 동향(動向) 3 페이지 | 수석넷™

수석계 동향(動向) 3 페이지

본문 바로가기
  • 회원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 접속자 47
  • 쇼핑몰
  • 커뮤니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석계 동향(動向)

Total 62건 3 페이지
  • 32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326
     수석의 신비한 매력  천공(天工)이 수 억년의 노력으로 빛어 낸 천연예술품을 수석이라고 부른다. 옛날엔 시인묵객이나 제왕장상들의 전유물이였다. 그런 수석이 현대에 와선 마침내 소수의 권귀계층(權貴階層)이나 문인아사(文人雅士)들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대중문화로 발 빠르게 확산돼 가고 있음은 참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수천년 전부터 사람들은 안방에 수석을 모셔놓고 그것을 감상하는 재미에 흠뻑 빠졌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수석에 신비한 매력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강이나 바다가나 가면 종종 돌밭을 만나게 된다. 수없이 많은 돌 속에는 예술적으로 생긴 돌이 숨어 있다. 이런 돌을 가르켜 수석이라고 한다.  수석에는 해와 달, 산과 물, 꽃, 나무, 사람, 동물, 문자...등 천태만상의 다채로운 그림과 기기묘묘한 형상이 응축돼 있는데 그 내용의 풍부함과 다양함은 인간이 창조한 모든 예술을 가름한다. 너무나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이 빚어낸 그 무궁한 신비는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킨다. 그래서 누구나 그 매력에 빠지게 된다. 수석은 무언의 시(詩)이며 입체적인 그림이며 응고된 세월이기도 하다. 작은 자연석 안에 우주의 삼라만상과 그 신비경이 응축돼 있으니 어찌 보배롭지 않겠는가?  수석을 소장하는 것은 자연골동을 소장하는 것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술을 소장하고 세월을 소장하고 우정을 소장하고 문명과 지식과 대자연의 선물을 소장한다는 내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수석과 가까이 하고 수석을 배우게 되면 정신상에 기탁이 있게 되고 심적인 편안함과 즐거움을 감수하게 된다는 점이 수석의 가장 중요한 매력일 것이다. 그 밖에도 건강도모에 유리하고 이심전심의 좋은 친구도 사귈 수 있다는 점과 그리고 수석이 가지는 보물적인 가치도 홀시할 수 없는 매력이다. 이런 수석이야말로 건강하고 고상하고 즐거운 취미가 아닐 수 없다.  글쓴이: 김학송…
  • 31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353
     수석은 단지 좋아하는 돌을 그대로 꾸며 즐긴다면 예술성이 나오기 보다는 그냥 돌을 애완 하는 취미가 되어 버립니다수석에서 예술성을 찾으려면 수석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과 연출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 등을 이용하여 수석이 지닌 아름다움과 예술성이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아무리 좋은 돌이라도 그대로 두면 돌멩이 인 것이고, 돌에서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예술성이 태어나지 않은 것일 겁니다. 좋은 돌은 그 돌이 지닌 아름다운의 느낌대로 수반,좌대 등의 방법으로 연출을 극대화 하여 수석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여야만 예술로 승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수석의 좋고 나쁨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여러 연출 도구의 좋고 나쁨까지도 알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배합하여, 장식을하는 사람의 생각 · 표현 능력으로 인하여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그 심미안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석은 종합 예술이다 " 라고 말할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아무리 좋은 돌을 가지고 있어도, 그 돌을 돋보이게 장식을 할 수 없으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또한 그것과는 반대로, 좋은 돌 · 수반 · 등을 가지고 있어도 수석과의 배합이 진부한 것이면,수석을 죽일뿐, 예술까지 승화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감각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뒷받침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수석의 도(道)는 수석과 관련된 여러 연출 도구를 적절히 배합하여 감상자에게 편안하게 최소한의 필요한 이해를 표현하는 센스가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 합니다…
  • 30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354
    흑국석(黑菊石) / 정태귀돌이 꽃을 피웠다. 깊은 땅 속의 열과 압력은 신라 아사달의 혼을 빌려 와 하얀 돌에다 검은 국화꽃을 새겼다. 숨결도 맥박도 뛰지 않는 차디찬 무생물. 그것에서 열과 피가 흐른다. 수천 수억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돋을 새김의 낙관이다.  태고의 정적마저 감돈다. 고상하고 품위 있는 동양 풍류의 묵직한 멋이 풍긴다. 속되어 지조가 낮은 사람의 매골과는 다른 세속을 초월한 여유가 보인다. 하얀 돌 속에 까만 국화 송이가 운치 있게 안겼다. 더 이상의 다른 색채가 끼어 들 틈도 없다. 순화된 백과 흑의 대비는 한없이 흐른 시간이 빚은 어울림이다.  흑국(黑菊)은 백석(白石)의 응혈이다. 신열 끝에 피워 낸 생명력이다. 강함과 당찬 속내는 알지 못하나 짙은 향기를 품어내 듯 꽃은 살아 있다. 눈여겨보지 않아도 그 황홀한 내면의 불꽃은 소리 없이 타오른다. 백석을 통한 흑국과 흑국을 통한 백석이 극치를 이룬다.  그 전시실에는 희귀하게 생긴 돌들이 즐비했다. 거북이 등을 빼어 닮은 구갑석, 물결 하나 일지 않는 호수석, 물굽이를 세워놓은 폭포석 등. 생각 없이 둘러보는 동안 유심히 나를 끌어당기는 물상이 있었다. 흑국석이다. 첫눈에 그랬던 것은 아니다. 몇 번을 그냥 지나쳤다. 어느 사이에 겨울의 품속으로 걸어오는 봄의 햇살이 되어 조용히 다가왔다. 볼수록 느낄수록 순일한 정감을 피워낸다.  어찌 보면 거만하고 도도해 보이는 돌이기도 하다. 옥류와 벗하는 계곡의 바위처럼 매끄럽지도 않다. 기이하게 생기지도 않았으면서 가실가실한 돌갗의 촉감이 전율을 일으킨다. 흥건히 밴 귀티와 우아한 태깔이 서리어 세련미가 흐른다. 세월 속에 가라앉은 인고의 앙금을 훑어 낸 맑은 결정체는 시원스런 바람을 불러오는 표정을 그린다. 달빛을 받은 구름의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속살대는 조용한 소리도 들린다. 과묵하면서도 어짊과 너그러움도 지니고 있다. 냉정함과 아늑함의 균형이 절묘하다.  백석과 흑국과의 연(緣)에는 아무도 모르는 실화 같은 전설이 담겨 있을 성싶다. 많고 많은 꽃 중에서 국화꽃을 안으려한 백석의 심중은 어떤 것일까. 뭇꽃들이 시들어 갈 무렵이 되어서야 만개 하는 데에 마음이 끌렸을까. 이끌어 주는 대로, 길을 잡아 주는 대로 묵묵히 순행하는 꽃이기에 그랬을까. 국화로 몸을 가꾸면 오래 살고 몸이 가벼워진다는 속설에 솔깃했는지도 알 수 없다.  아니면 티끌 같은 국화 뿌리 한 줄기에게 그 돌은 터를 내 주었을 것이다. 토중(土中)과 달리 양분과 수분을 공급해 줄 재간도 없으면서 마음 하나로 품지 않았을까. 거미가 먹이를 실띠로 쟁여 감듯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씨앗으로만 간직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흑국 또한 그러하다. 싹을 틔우기 어렵고 뿌리내리기 힘든데도 꽃이 피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햇빛이 들고 통풍과 배수가 잘 되는 토양을 마다하고 차디찬 돌 속에 자리를 잡았으니. 장구한 세월을 이겨내는 동안 국화꽃은 한땀 한땀 징을 박아 망울을 터트렸으리라. 햇빛 한 줄기 받지 못했지만 돌 품에서의 개화를 소원했지 않았겠는가. 그 애태움이 오죽했으랴. 열정이라는 날개를 타고 급하게 솟아오르지 않고 아주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우회하여 피어올랐을 텐데. 자신의 몸이 까맣게 되는 줄도 모르고 속 태우기를 거듭했겠지. 그래서 까맣게 피어났겠지.  백석과 흑국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예전에 약속된, 끝내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런 받아들임이다. 수없이 해가 바뀌고 세대가 돌아도 변하지 않을 영혼의 상봉이다. 영원한 현재형이며 시들지 않을 사랑이다. 그래서 고급스런 시선은 오랜 동안 흑국석에 머물 것이다.  사람들이 소중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때, 왜 애지중지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물건이 기쁨을 안겨주고 마음을 변화시키리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돌에 대하여 문외한이면서 탐을 낸다. 그것이 무엇일까. 가까이 오면 거절하기 쉽고 멀어지면 저버리게 되는 사람관계와는 다른 까닭일까. 부질없는 망상일지도 모른다. 아니, 애착일 것이다. 애착이라는 것은 되려 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기도 한다. 삶의 덧없음에 한숨짓고 그 속절없음을 하소연하기보다는 애착,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은 열리고 깊어진다. 얼마나 깊고 깨끗한 즐거움인가.  내가 흑국석을 자주 생각하는 이유는 그 돌이 아픔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모습을 내게 비추어서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에게는 짙은 향기가 있지 않은가. 흑국석에서 국향이 은은히 퍼진다. 그 돌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없이 순연해진다. 잔잔한 기쁨이 물살 치고 행복감에 젖는다. 발그레지는 봄기운이듯이 빛 고운 마음이 된다.  흑국석이 내 마음을 아는가 보다. 나부끼는 주아사처럼 환영이 아른거린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지고 또렷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선다. 어둠 속으로 피하면 환한 빛이 되어 다가온다.  흑국석은 고가의 수석이란다. 마음 한 구석을 비워 흑국석이 들앉을 자리나 마련해야 한단다. 언제까지라도 그 곳에 머무르며 기다릴 거란다. 나는 두고두고 그 흑국석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 출처: 다음블로그 장대명화 http://blog.daum.net/cns500713/248…
  • 29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330
    수석은 ‘발견의 미학’ 안목있어야 부처 친견   고불총림 유나 지선 스님은 ‘민주화 투사’로 이름나 있다. 1999년 동안거 결제 이후 지난 1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0안거를 성만했건만 ‘투사’라는 고정된 이미지는 여전히 돌에 새긴 듯 또렷하다. 이젠 수좌로서의 위의도 걸림이 없어 보이는 지선 스님에게는 또 하나의 세속적인 ‘직함’이 있다. 바로 한국수석회와 대한수석인총연합회, 한국자연예술인총연합회의 고문이 그것이다. ‘수석’과의 인연이 스님을 세 단체의 최고 어른인 고문으로 모시게 된 연유이다. 세간에서조차도 호사스럽고 사치스런 취미나 직업으로 여기는 수석, 얼른 보기에는 수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스님이 생각하는 수석과 수행에 대해 여쭈었다. ▷수석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벌써 한 40여년이 된 것 같아요.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허리가 아프셨는데 고통이 심하실 때마다 마을 앞 강변에 가서 돌을 주워오게 하셨지요. 하얀 띠를 두른 돌을 담아 왔는데 할머니는 그 돌들을 넣고 끓인 물을 마시기도 하고 그 물로 목욕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돌을 좋아하게 되었지요. 불갑사 주지를 하다가 마당에서 달마대사를 닮은 돌을 하나 주워서 모시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한 번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신문에서 ‘돌에 미친 사람들’이란 기사를 보고 사람들이 돌을 좋아하는 이유에 공감하게 되었지요. 그 인연으로 해서 1980년대 초 한국수석회를 창립하게 되었고 창립을 기념해 첫 전시회도 열었지요.” ▷스님께서도 수석에 대해 경계하셨듯이 수행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집착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수행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외도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화엄종을 개창하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나 휴정 서산대사 등 역대 고승들은 물론 조사님들도 돌을 좋아하셨습니다. 옛 큰스님들을 그린 그림을 보면 항상 돌이 옆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돌은 그냥 아무런 감정도 없는 무정의 물물(物物)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대웅전이나 전각 모두가 돌 위에 앉아 있으며 우리의 삶 또한 늘 돌과 함께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돌은 모든 생명의 원류이자 에너지의 원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의 설명에도 수행과 수석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부처님의 삶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 같이 살고 있다면 참다운 수행자라 말할 수 있겠지요. 수석을 ‘발견의 미학’이라고 하는 데 돌 속에 숨어 계신 불보살님과 생명의 가르침들을 발견하기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돌무더기 속에서 부처님을 발견하고 거북이와 두꺼비, 산수화를 찾는 것은 분명 두두물물(頭頭物物)이 개시불법(皆是佛法)이라는 이치를 깨달아 가는 과정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과정 과정에서 삼독의 씨앗이 자랄 수 있으니 평상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출처: 법보신문  http://beopbo.com/  …
  • 28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377
     LA 식물원에서 내달 4일부터 자연친화적인 수석 전시를 한다고 하네요다음 이정애 한미수석협회장 인터뷰 기사를 참고로 올립니다."한국 수석과 중국, 일본, 미국 수석은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자연을 대상으로 취미를 삼는 것 중에서는 으뜸이라고 봅니다."한미수석협회(회장 이정애)가 내달 4일부터 이틀간 LA식물원에서 제20회 수석전시회를 개최한다. 수석(壽石)은 주로 실내에서 감상하기 위해 수집하는 특이한 형태나 문양, 색깔을 지닌 자연의 돌을 말한다. 그러나 중국, 일본, 미국의 수석과는 다르다는 것이 이정애 회장의 설명이다. 한국의 수석은 바로 '있는 그대로(as is)'다. 반면 다른 나라의 수석은 닦고 기름칠하고 씻고 심지어는 자르고 붙인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의 수석은 수석(水石)으로 한자의 의미부터 우리와는 다르다. 이 회장은 "자연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상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의 수석은 자연친화적인 취미인 반면 다른 수석은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다"면서 "우리 것은 자연의 미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많은 사람들이 수석을 보석 캐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측면이 있다"며 "돌을 고르는 탐석, 수석의 특성을 살리는 양석과 연출, 감상이 모두 취미"라고 설명했다. 간혹 전시회나 협회로 수석을 사고 싶다는 의사가 전해지지만 개인에 따라 수석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져서 미주에서 거래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이번 전시회의 작품도 모두 소장 작품이고 몇몇 회원만이 새로 찾아낸 수석을 소개한다고 한다. 수석인들의 아름다운 취미활동을 소개해서 동호인을 늘리고 싶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작품은 50~75점 전시되고 가족끼리 식물원 구경과 함께 전시회를 찾으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주소: 301 North Baldwin Ave. Arcadia (Ayres Hall) ▶문의:(818)515-6130글·사진=장병희 기자  …
  • 27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97
     완도 수석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청해진 수석관이 2014년 4월 21일 개관식을 거행 하였다김종수 완도군수를 비롯한 완도군의 각 기관장 및 완도시민 100여명과 외부 인사 100여명 등 약 200명이 운집한 가운데 진행된 이번 개관식에는 최상호 사)대한수석인총연합회 총 회장,정형기 전남연합회 회장,손정익 울산연합회 직전회장, 안이근 인천연합회 회장 외 많은 수석인들도 참관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다만 얼마 전 일어난 진도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자를 애도하는 마음의 숙연한 분위기였다 김종수 완도군수는 “완도, 진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해석 산지를 보유하고 있는 이곳 완도에 청해진수석관을 개관함으로 해서 완도시민은 물론 수석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도의 아름다운 수석문회를 전해주고 아울러 완도의 문회를 확대해가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흰 보를 걷는 제막식이 거행되었고, 참석한 모두의 만변에 가득 미소로 화답하며 청해진수석관 개관식을마쳤다. 자료출처: 수석문화 2014년 5월호수석문화 찰영및 구독안내http://www.suseok.net/bbs/board.php?bo_table=reference&wr_id=26…
  • 26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72
     지난 10월 16일 평창 수석의 전당 건립 추진위원회 이욱환 위원장은 평창군과 수석 기증 협약식을 갖고 30여년을 수집하여온 수석 120여점을 기증하였다. 이욱환씨는 평창군 평창읍 출신으로 현재 평창군 보훈단체협의회장, 문화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평창군 관계자는 “이날 기증된 수석은 평창강, 남한강, 점촌 등 전국 산지에서 수집한 수석으로 산수경석, 물형석, 문양석 등 다양한 형태의 품격 높은 수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120점의 평가금액은 약 2억 원 정도” 라고 밝혔다.한편, 기증자는 총 300여 점의 수석을 소유하고 있으며, 우선 120점을 기증하고 수석의 전당 건립 일정에 맞추어 나머지 180여점도 조건부 기증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더 보기>> 출처: 브레이크 뉴스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290178 …
  • 25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76
    수석문화의 미래는 있는가?  만추의 계절도 이제는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요즘 들녁을 거닐어 보노라면 참으로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누우런 벼이삭이 만삭이다 못해 등이 굽어라 탐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반겨오지만 가을걷이를 하는 늙은 농심은 풍요로움에 흥겹지만은 않은 모습들이다. 몇년 연이어 풍년이 찿아오더니 급기야는 쌀도 남아돈다며 추곡수매가와 수매량이 떨어지고 이는 생산가도 못미치는 가격이라 아예 추수를 포기하고 1년동안 피땀흘려 가꾸어온 벼들을 갈아엎어 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함에도 정부에서는 뚜렸한 대책을 발표하지 못하는 현실에 농부의 가을 걷이가 흥겨울리만은 없는게 현실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또한 수석계 현실을 되집어 보고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고 있다.  수석문화 ! 과연 이대로가 좋은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뚜렷한 대책없이 이 한해도 저물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기야 수석계 현실을 나 한사람만의 걱정으로 되는것은 아니다. 또한 누가 어찌하던 역사의 흐름은 수레바퀴 속에서 굴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어쩌면 그렇게도 수석계가 작금에 정치판 현실과 같은지.... 수석문화는 정치와는 다름이 분명한 것이거늘...... 수석문화는 문화의 일부분으로 예술이다. 다만, 창의적인 창작예술인 미술, 서예, 공예, 문학, 조각, 국악등 창작 예술과 달리하는 창견 예술인 것이다.  대자연의 일부분인 수석에서 그 아름다움을 발견,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승화하는 자연예술이다.자연예술에도 생명력이 있는 분재, 란, 야생화 등 인간의 인공미와 정성이 깃들어져 아름다운 생명력을 이어가면서 표현하는 생명연장의 표현예술과는 전혀 다른 자연 그대로를 가지고 그속에서 아름다움을 찿고 이를 음미하고 감상하는 창견 즉 발견 예술인 것이다. 이러한 수석문화는 특히 우리 동양 3국에서 유래되어 왔으며 우리 선조들이 그 자연예술의 순수성을 찿아 그 모습에 매료되어 즐거움을 느끼며 그 즐거움을 기록으로 남기어 이어져 내려온 문화이다. 우리 동양의 사상과 철학이 수석에 내포되여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정신문화로 선비정신의 문화인 것이다. 우주 만물의 형성과 그조화의 이치를 이해하면 수석에 대한 이해도 빠를 것이다. 헌데, 요즘들어 그 본질을 망각하고 해괴망측한 말들이 거침없이 인터넷상에 오르내리며, 이를 정당화 하려고 수석의 본질을 왜곡하려 하고 있는 현실에 가슴이 저려옴을 느낀다.  먼저 문화란 변화하여야 살아 남는게 정설이다. 시대에 흐름에 따라 그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하여도 그 본질이 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 수석문화의 본질은 계승되어지며 현실문화와 접목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 수석계의 현실을 한번 돌아보자. 그야 말로 난장판이다. 정신문화에서 물질문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제갈길을 잃은체 방황하고 있다. 그 본 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현실정치에 물들어 계파가 형성되어 하나의 문화를 가지고 패가 갈려, 서로를 비방하고, 음모하고 권력다툼이나 다름없는 자리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이를 보면 이러한 단체는 수석문화를 계승하려는 것이 아니라, 수석이란 단어를 빌미로 앞세워 자기 과시에 열을 올리고 폼잡는 즉 어리석은 이기적인 집단의 행동인 것이다.이에 괴멸감을 느끼며 참 수석인은 하나 둘 떠나고 있음이 현실이다. 또한 자리싸움, 감투싸움에서 멀지않아 금전혈투까지 벌어지게되어있다. 사실 서울의 모 연합회 부회장에 있던자가 사무국장으로 있을시, 전시잉여금 중 천만단위 거액을 횡령하고 지금까지 내놓지 않고 있어 말썽이되여 연합회 부회장직에서 물러난 사실이 있다. 앞으로는 정치에 물살에 휘말려 그러한 사레가 더 많이 발생할 사유가 충분히 있고 또 예견되고 있다.  수석이란 선조들은 이렇게 집단적으로 단체를 형성하여 즐기는 문화가 아니였다. 혼자서 그자연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 음미하고 즐기며 그 즐거움을 글로서 표현하였고 또한 절친한 자에게만 이를 가르쳐주고 전수 계승케 하였던 선비정신문화속에 그 창견 정신이 이어졌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현대에 와서 자본주의에 부합되여 물질에 비유되어 상업성이 부각되고 이에따라 새로운 장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술적이고 회화적인 부분이 새로이 접목되여 해석이란 장르도 새로이 발견되는 참으로 고무적이고 획기적인 변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즐기는 우리 수석인에게도 문제는 있다. 86년도를 지나며 갑작스레 수석붐이 조성되여 현실에 이르다 보니 과부하 현상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 수석의 본질과 기본 정신도 모르면서 그예술성의 가치기준이 물질문명에 결부되어 타락하고 있음이다. 그러기에 상업성이 있는 마석 즉 가공석이 나오고 이로 인하여 수석인 간에 논쟁이 일고 심지어는 광석인 다이아몬드 비유법이 나오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광석으로 가공석이다. 자연광석의 결정체를 가공하고 연마하여 나온 것이 다이아로 인간의 가공작품이다. 큐빅은 인간이 그 성분을 인공적으로 제조하여 만든 것이다. 함에 어찌 수석과 마석을 다이아와 큐빅에 비유한단 말인가? 즉, 이말은 그런 비유법이라면 마석 즉 가공연마석도 다이아몬드처럼 귀하게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인지 이렇게 논리아닌 논리를 전개하며 또 한번 혼돈의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결론으로 수석은 순수한 자연 창견예술로서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계승되어 가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다. 또한 현실의 갈등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여 수석계도 흐름에 따라 서서히 변화하며 잘못된 부분에 대하여서는 스스로 변하도록 자성의 자리를 가질수 있도록 스스로의 자질향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새로운 장르의 수석감을 찿고 그 발견된 수석감을 감상의 격을 높여갈때 수석문화는 진일보하고 살아 남을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에 예술을 하면서 각기 다른 길을 가려는 단체 모임이 하나가 되도록 책임있는 자들이 앞장서 중지를 모아야 수석문화가 이땅에 다시 피어나고 승화하는 수석계가 될것을 아야기하며 이글을 맺고져 한다.  수석인 모두 화이팅 ........................  2001.  11.  3仙 巖 라 춘 식 씀   (사진은 선암 소장석으로 호랑이 문양석)위 글은 2001.  11.  3 일 작성된 글이며 우석 정우권 님 홈에서 펌 해 왔음을 양해 드립니다우석 ☞ 홈페이지: http://www.wseok.com/ …
  • 2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418
    수석취미의 벽을 어떻게 넘을까 {2001. 9. 11 우석 정우권 님의 글을 이곳에 소개합니다.]  1. 글 머리에 필자는 예전에 바둑을 열심히 둔 적이 있었다. 수석에 심취하기 전 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바둑을 두고는 했었다. 처음 바둑을 배운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형님에게 9점을 놓고 배웠는데, 필자가 바둑에 천부적인 재질이 있었던지 두 달만에 형님하고 맞바둑을 둘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형님의 실력도 별로 높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처음 그렇게 빨리 늘던 실력이 어느 단계가 되니까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다. 즉, 제멋대로 두는 바둑의 한계가 온 것이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바둑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둑책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바둑책(위기개론-조남철저로 기억된다)을 한 권 구해서 한번 읽고 나니 스스로도 기력이 한단계 상승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즉, 처음 나에게 닥쳐 왔던 벽을 기초상식책 한 권으로 거뜬히 넘은 것이었다. 그 뒤에 또 한번 벽을 만났는데 이 때에도 역시 책의 힘(조금 수준이 높은 책)으로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벽에 부닥친 채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만날 그 상태로 답보하고 있는 중(아마도 4급 정도 실력일 것인데, 이 실력이 15년은 되었을 것이다)이다. 수석에 심취하면서 바둑에 흥미를 잃고 잘 두지를 않으니까 자연히 그 벽을 넘으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수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바둑 이야기를 왜 장황하게 늘어 놓은 것일까? 바둑뿐만이 아니라 수석취미를 포함한 모든 취미 생활에 벽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고, 그 벽을 하나하나 넘어야만 발전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수석취미생활을 함에도 분명히 벽을 만난다고 생각한다. 그 벽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취미생활의 권태일 수도 있고, 수석에 대한 겉잡을 수 없는 욕심일 수도 있고, 수석을 보는 실력의 한계를 느끼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2. 첫번째 닥쳐 온 벽 1978년에 수석에 입문한 필자가 수석취미생활에서 처음 마주친 벽은 수석의 기초이론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실물수석을 대하지 않고 처음 수석에 입문한 필자는 그 만큼 이론에도 깜깜하였었다. 나의 첫탐석기에서도 거론한바 있지만, 필자는 전생에 수석하고 좋은 인연이 있었는지 수석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 말만을 듣고 수석취미에 대한 동경을 했었다. 아무 것도 모르던 때에도 가족과 함께 한탄강에 놀러 갔다가 돌을 주워 왔을 정도니까... 그러다가 직장에 수석을 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그 사람들에게 수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수석이론에 대한 첫번째 공부였다. 새까맣고 단단한 돌로 뭐 닮은 돌을 찾으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무 냇가 또는 강가에서 수석이 나오지 않고 산지가 따로 있다는 것도 그 때에 들은 말이다. 나에게 그 상식을 알려 준 직장 동료는 원로급 수석인이신 박기표선배님(한국수석인총연합회 감사를 지내신 분)의 인척이 되는 사람이었는데, 바로 박기표선배님께 수석을 배운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 필자가 박기표선배님을 만나서 같이 탐석을 간 일이 있었는데, 그 때에 필자가 수석을 배운 경위를 이야기하면서 선배님의 간접제자라는 말을 해서 웃은 일이 있었다.  이렇게 배운 수석이니 곧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탐석을 가서(주로 가까운 여주방면으로 다녔다) 돌을 주우면 "이것도 수석이 될 수 있는 것인가?"하고 혼잣말을 하며 가져올까 말까 망서렸던 생각이 난다. 모르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되겠다. 수석을 배우자!" 하고 생각하고는 우선 실물수석을 구경하러 열심히 다녔다. 아는 수석인이 없으니까 주로 수석상회로 다녔다. 그 당시에 돈암동쪽과 안암동 쪽에 수석가게가 여러 곳이 있어서 구경을 여러 번 갔었고 -수석가게에 들어 갈 때에 돌을 살 것이 아니고 구경만 할 것이니까 자격지심에 눈치가 보여서 괜히 망서려지던 생각이 난다- 그 곳 외에도 어디에 수석가게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구경을 가보곤 했었다. 그 때 가 본 곳은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 옆과 아현동 고개, 그리고 지금 정부종합청사 인근의 수석상회가 기억이 난다.  실물을 자꾸 보니 어떤 것들이 수석이라는 것은 대충 알겠는데, 이론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으니 역시 한계가 느껴진다. 그래서 찾게 된 것이 수석관련 서적이다. 석록(석보)을 구해서 본 것도 이 무렵이었고 두 권의 이론서를 사서 공부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먼저 사 본 책은 고 장준근님이 지으신 이론서인 '정통수석취미'였고 다음에 사 본 것은 이면근님(월간애석에 '자연의 숨결 따라, 세월의 흔적 찾아'라는 제하의 글을 연재하시는 분)께서 지으신 이론서(겉장에 멋진 폭포석 그림이 있는 책인데 유감스럽게도 책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였다. 두 권의 책을 정독하고 나니 "아. 수석취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눈 앞이 훤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때가 1980년대 초였었다. 그리고 나서 당시 유일한 수석잡지인 분재수석(장준근님이 격월간지로 발행하고 있었다) 잡지사를 종로로 찾아가서 그 동안 발행된 분재수석지를 절품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한 권씩 사 와서 읽어보며 공부를 하였다. 이렇게 보기 시작한 수석잡지는 분재수석 - 자연미생활 - 월간수석 - 수석문화 - 월간애석으로 바꿔가며 현재도 구독하고 있는 중이다.  3. 두번째 벽 필자가 느끼고 있는 두번째 벽은 미술적인 안목과 상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구상쪽은 그런데로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 좋아하니까 그럭저럭 넘어가겠는데 문제는 비구상(추상) 쪽이다. 사실 미술적인 안목은 타고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불행하게도 이런 재주를 타고나지 못했다. 추상과 관련한 이론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변에 명쾌한 설명을 해 주실 분도 없고... 이 분야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요즈음 추상석으로 분류되는 돌을 보면 어떤 것은 마음에 들고 좋기도 한데, 이 돌의 어떤 면이 어떤 감흥으로 다가오기에 좋아하는 것이냐고 물으면 선뜻 명쾌한 답을 하기가 어렵다. 추상석은 형상석이나 문양석, 색채석 모두 마찬가지이다.  일부 지방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해석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잘룩이 돌이나 사유석으로 분류되는 돌들을 보면 그런 데로 이해가 되기는 하는데, 문양석류는 솔직히 그렇게 커다란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해석 문양석류도 상당한 값으로 거래된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가 내 마음에 그 정도의 무게를 가진 돌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석이라는 이 벽을 넘기 위해서는 역시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잡지나 인터넷에 올라 있는 돌을 열심히 보고, 느껴야 할 것이며, 시간 나는 대로 전시회등에 가서 실물을 보고 돌밭에도 나가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해석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이면에는 몇몇 선각자들의 꾸준한 노력의 힘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들이 강돌이나 일부 강돌 기준의 해석에 안주하고 있을 때에 부단한 노력으로 해석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으며,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알리느라고 노력한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해석들이 수석잡지에 등장하였을 때에 서울의 수석인들은 "돌도 돌 같지 않은 것을 갖고 요란을 떤다"라고 하던 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4. 세번째 벽 세번째의 벽은 수석취미에 대한 권태감을 들고 싶다. 오랜 취미생활을 하다가 보면 수석취미에 대한 회의와 환멸감이 들 때도 있고, 본인에게 닥친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는 수석을 떠나기도 하는 것이다. 하기는 일심동체라는 부부에게도 권태기가 있다는데 평생을 같이하는 수석취미에 권태가 닥쳐 올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서울의 수석인 중에는 남한강 수몰(충주댐 담수로) 후에 마땅한 탐석지가 없어서 수석을 멀리하게 되더라는 분들도 상당수 있다. 물론 이 분들 중에는 탐석을 나가지 않더라도 그 동안 모아 둔 수석들을 즐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탐석을 나가지 않으면서 열기가 식었다는 분들도 많이 있다. 그런 분들은 골프나 등산등 다른 취미에 눈을 돌리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권태감에 빠져 들지 않거나 벗어나는 일은 한동안이라도 수석취미에서 멀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드시 한 동안 수석취미에서 떠나 있으면 점점 멀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이라도 탐석을 다녀야 하고, 수석잡지를 구독하거나 인터넷 수석홈을 구경하는 등 수석에 관한 정보를 받아 들이고, 신선한 자극을 계속 받아야 한다. 전시회가 있을 때에 동호인들과 함께 구경을 가보는 것이 신선한 자극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요즈음은 인터넷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있다. 인터넷 운영자니 글을 올리는 분들이 전국의 산지 소식을 전해주기 때문에 장거리 탐석계획도 세우고 전의를 불태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홀로 수석을 하지 말고 동호인들을 만나야 하며, 가능하다면 단위수석회에 가입하여 같이 활동하는 것이 좋다. 동호인들을 통하여 새로운 산지등 정보를 듣고 아무개 회원이 지난번에 명석을 했다더라하는 소문에 자극을 받아서 탐석행에 나서게도 되는 것이다.  5. 네번째 벽 이것도 수석취미생활에 있어서 벽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수석욕심에 대한 것도 한 번 거론해 보아야겠다. 필자의 경우에도 수석에 대한 욕심은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하나의 벽이다. 새로운 수석, 그리고 좋은 수석에 대한 갈망은 거의 대부분의 수석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사항일 것이다. 돈에 대하여 비교적 초연한 사람들도 수석에 대하여 만은 많은 욕심을 갖고 있는 것을 익히 보아왔다. 그러다보니 수백, 수천점의 수석을 소장하고 있다는 자랑을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수석을 모아놓고 주체를 하지 못하여 거실, 안방을 비롯한 집안 곳곳에 수 많은 수석을 쌓아 놓드시 보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아직 넘지 못한 이 벽은 어쩌면 그 만큼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일지도 모른다. 수석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사람 중에 이렇게 욕심이 많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욱 넘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 벽을 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게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던지, 연출과 전시를 깔끔하게 해 놓은 동호인의 집을 방문한 후에 새로 눈을 뜬다던지 하는 게기 말이다. 마음 속에 하늘의 게시처럼 다가 온 이러한 때를 놓치지 말고, 소장하고 있는 모든 수석들을 냉정한 눈으로 재평가해서 남길 것만 남기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버린다는 말은 돌밭에 되돌리거나 초심자에게 수석을 선물하는 것을 포함하는 의미이다.  이 경우 한 번에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때에는 일차로 골라내고, 한 동안 감상하다가 이차, 삼차로 골라내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나중에는 평생을 같이 할 정예수석만 남게 될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어떠할까? 필자의 경우에도 두 차례 정도의 정리를 하였는데 그 뒤에 또 탐석해 온 것도 있고 해서 앞으로도 몇 번의 엄선기회를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요즈음은 일제정리외에 수시로도 골라내어서 탐석나가면서 되돌리고 있는데 보다 근본대책은 탐석가서 돌을 가져 올 때부터 개성있는 돌만을 가려서 소수정예로 가져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6. 맺는 말 이 외에도 수석을 팔아 돈을 만들겠다는 유혹도 벽이라면 벽이겠으나 여기서는 논하지 않는다. 수석취미에 있어서 벽은 누구에게나 닥쳐 오지만 누구나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수석과의 대화는 수석인이면 누구나 바라는 최고의 경지이겠지만 누구나 그 경지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극소수의 수석인 만이 그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끊임 없이 노력하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마음을 갈고 닦으며, 끊임 없이 물움표를 던지며 수석에 몰입하여야 만이 그러한 경지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의 벽들도 마찬가지이다. 그야말로 조금 아는 수석상식에 안주하여 그 이론만을 되뇌인다면 더 이상의 발전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수석이론은 쳐다보려 하지 않는 이에게 새로운 경지로의 도약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석인에게는 애초에 벽이 다가오지도 않을 것이겠지만...  수석인들은 싫든 좋든, 본인에게 어떠한 벽이 닥쳐 왔고 그 벽을 넘었는지, 아닌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하나의 벽을 넘어서 현재의 위치에 와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경지에의 도약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계량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벽을 넘는 것의 의미와는 다를지 모르지만, 수영을 처음 배울 때에 어느 한 순간 "아!" 하는 사이에 몸이 물에 떠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거나, 자전거 타는 것을 고생하며 배울 때에 역시 어느 한 순간 "아!" 하는 사이에 혼자서 자전거를 타게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우리 수석인들은 벽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수석에 대한 깊이가 더해 갈 것이며, 어느 단계가 되면 수석취미의 최고봉 석선의 경지에도 이르게 될 것이다. 모셔온 글입니다  http://www.wseok.com/출처 :제천수석사랑동호회 …
  • 23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430
    수석(壽石)의 양석(養石)에 대한 고찰                                   글쓴이    遇石   鄭  遇  權   수석(壽石)이 본래 지니고 있는 피부(皮膚)와  색상(色相), 그리고 고태미(古態美)가 나타나도록 가꾸는 것을 수석의 양석(養石)이라고 한다.   물론 수석의 모양을 변형하는 등의 인공을 가하는 방법은 허용되지 않는다.양석(養石)이라는 말은 우리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용어인 것으로 보아서, 일본에서 나온 용어가 아닐런지....    그러나, 국어 사전에 나무를 가꾸는 것을 양목(養木) 이라고 하고(소나무를 가꾸는 것을 양송(養松)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잘 다스리는 것을 양생(養生)이라고 하며, 심성을 바르게 기르는 것은 양심(養心)이라고 하고,  기력을 기르는 것을 양기(養氣)라고 하는 용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돌을 잘 가꾼다는 의미로 양석이라는 말을 써도 무방할것 같다. 양석하는 방법은 몇 가지로 나뉘어진다.  즉 수반석과 좌대석에 따라서 양석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다.양석하는 방법은 자연속에서 양석하는 햇볕양석이 있고, 하염없이 애무(愛撫)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손때양석, 그리고 수석에 이끼를 입히는 이끼양석등이 알려져 있다. 먼저 햇볕양석을 설명한다.탐석하여 온 돌은 물이끼나 물때등 잡물이 묻어 있어서 우선 깨끗하게 청소를 하여야 한다.  돌의 질이 강하고 피부의 변화가 많지 않은 매끈한 돌은 일반솔이나 쇠솔로 문지르면 비교적 쉽게 청소가 되지만 피부에 변화가 심한 돌은 쉽게 청소가 되지 않는 법이다. 쇠솔을 잘못 사용하면 자칫 손상의 염려가 있고,  그렇다고 물에 삶거나 약품을 사용하면 돌의 변색등이 염려가 되기 마련이다.  이럴 때에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 햇볕양석인 것으로 햇볕양석으로 돌의 때를 전부 제거시키는 것이다.  즉, 햇볕이 잘 비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돌을 내 놓고 자연스럽게 햇볕을 쏘이면서 비도 맞히고,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뿌려 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을 쓴다고 하여 하루 이틀만에 양석이 되는 것은 아니고. 느긋하게  긴 세월동안 계속해야 한다.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고, 최소한 몇 달은 계속할 각오로 임하는 것이 좋다.  한쪽면만 양석을 하며는 안되니까 일정한 기간마다 돌의 윗부분과 밑부분을 바꿔 가면서 양석을 하여야 한다.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 풍화작용에 의해서 돌의 잡물이 깨끗하게 제거되어서 그 돌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피부와 색감이 돋아 나오면서 고태미(古態美)를 풍겨주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리가 강으로 탐석을 갔을 때에, 물 속에서 탐석한 돌은, 물이끼등 지저분한 것이 많이 붙어 있어서 돌의 피부와 색감을 쉽게 알아볼 수 없지만, 물 밖 모래 위에서,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던 돌들은 깨끗한 본래의 피부 색깔을 갖고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런 돌들은 자연속에서 오랫동안 햇볕을 받으면서 자연양석(自然養石)이 된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수석잡지등을 통하여 오랜 세월 수석을 하신 원로급 수석인들의 자택을 방문하여 소개하는 것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집안에 진열된 수석들을 소개하면서, 그 분들 중의 몇 분은 양석장(養石場)도 사진으로 소개한 것을 본 일이 있다. 즉, 집 밖이나 옥상 위에 여러 개의 돌들을 수반에 놓거나 나무판자위 등에 돌을 죽 늘어 놓고 물을 뿌려주는 것 말이다. 그것이 바로 햇볕양석을 하는 광경인 것이다. 물론 이런 햇볕양석은 서울등 대도시의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은 시도하기 어려운 방법일지는 모르겠지만 양석의 정도인 것은 틀림 없는 것이다. 수반석은 이렇게 양석이 되었으면 바로 알맞은 수반에 올려놓고 물을 뿌려가며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좌대석은 이렇게 햇볕양석을 한 뒤에도 다시 손때양석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즉 좌대에 올린 돌은 물이 마른 상태에서는 돌 본래의 색감이 잘 나오지 않고 흐끄므레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러한 돌을 오랜 세월동안 손으로 쓰다듬어 주게 되면, 자연스레 손때가 묻어서 돌 본래의 색감이 돋아 나와 고태(古態)스럽게 되는 것이다.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돌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게 되고, 돌과의 대화도 무르익게 되는 것이다. 오랜 수석생활을 하신 선배 수석인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 그 분의 소장석 중 좌대석들이 잘 양석이 된 것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긴 세월 동안 얼마나 애정을 갖고 귀히 어루만졌는지 그 분의 손때와 숨결까지 느껴지는 듯 했다.  그것이 바로 손때양석의 기본인 것이다.그러나 현대인의 생활습성이 얼마나 바쁜가?  수석도 성급하게 양석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돌을 의도적으로 자꾸 문질러 주는 양석방법이다.  좋은 석질의 돌을 질긴 헝겁등으로 자꾸 문질러주게 되면 은은하게 돌 본래의 색상이 돋아 나온다고 하였다.  더욱 급하게 양석시키는 방법은 돌에 기름을 발라주는 방법이다.  손에 기름을 살짝 묻혀 가지고 돌을 쓰다듬어 주면 자연스레 돌에 기름이 묻어서 본래의 색상이 나오게 된다. 될 수 있는 대로 적은 양의 기름을 묻혀서(기름을 묻히지 않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색상이 돋아 나오도록 신경을 써야지 기름에 집어 넣었다가 빼낸 것처럼 많은 기름을 묻히면 안되는 것이다.  기름을 많이 발라 놓은 돌을 보며는 화장을 짙게 한 화류계 여성 같아 천박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기름도 아무 기름이나 마구잡이로 묻혀서는 곤란하다.  들기름이나 일반 식용유를 칠하게 되면 끈적끈적해 지면서 돌에 코팅이 되므로 이런 것은 피해야 한다.  어린이 목욕 후에 발라주는 베이비오일이나 야자유 그리고, 여자들 화장용 콜드크림등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며, 옛 선인(先人)들은 호도씨나 잣씨로 문지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기름을 칠하는 방법도 아무 돌에나 통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석질(石質 )이 무른 돌은 기름을 칠하여도 시간이 지나면 다 기어먹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적당한 경도의 돌(4도~7도 정도)이 기름양석이 잘 되는 것 갖고 너무 강한 돌은 기름을 칠하여도 돌로 스미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다 날라가 버리는 것 같았다.기름양석은 원칙은 한번만 칠하고 그후에는 애무에 의한 손때 양석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름이 날아가 버리거나 기어먹는 돌에 자주 기름을 칠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도는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또, 돌의 양각된 부분에만 손때 양석을 하여서 그 부분을 강조하기도 한다(한 때 유행한 방법이었다).   변화가 많은 돌은 파인 부분은 그대로 두고, 겉부분만 손때를 먹여서 돌의 변화를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수반석 말고도 손때를 묻히거나 기름양석을 하며는 안되는 돌들도 있다.  주로 문양석 종류에 그러한 돌이 많은데, 손때 또는 기름을 묻히거나 심지어 물을 뿌려도 미세한 선이나 그림의 색감이 죽는 돌들이 있다.  이런 돌들은 왁스를 살짝 발라 주고 헝겁으로 문질러 주는 양석 방법을 많이 쓰고 있는데, 수석의 정도(正道)로 보기는 곤란하지만 현재 수석계에서는 허용하고 있는 추세이다. 또다른 양석 방법은 이끼양석이 있다.  주로 형은 아주 훌륭한데 석질이나 색감이 좋지 않은 돌을 버리기 아까울 때에 돌에 이끼를 입혀서 감상하는 방법이다.  시간과 노력과 기술이 필요한데 요즈음은 많이 이용하지 않는 것 같다.   이끼양석도 비단이끼를 입히는 방법과 입자가 고운 이끼(청태)를 입히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다. 예전에는 전시회에도 이끼양석된 돌이 출품되기도 하였지만 요 근래에는 보지 못하였고, 솔직히 필자도 이끼 양석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히 그런 양석 방법도 있다는 것에 대한 소개로 그친다. 이상으로 양석에 대하여 간단히 고찰하여 보았는데, 이러한 양석 방법들이 필자의 고유한 주장은 아니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방법들을 소개한 것이고 비슷한 내용들이 이미 잡지등에 소개되었던 것임을 밝혀둔다. …
  • 22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99
    문양석이란 이질의 돌이 혼합된 것으로 그 표면의 무늬가 자연만상의 어떤 모양을 아로새기고 있는 돌을 말한다. 이 문양석의 생명은 아름다운 색감의 조화에 있는데 그것은 회화적(繪畵的)이고 사실적(寫實的)이며 우아하고 은은한 색채를 띠어 풍부한 시정(詩情)이 떠오르는 것이어야 한다.  문양석도 물형석과 마찬가지로 무늬에 나타날 수 있는 자연만상의 어떤 모양은 무수히 많으며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무늬여야 하고, 정서와 추억에 얽힌 밝은 그림으로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석면(石綿)에 새겨진 무늬의 모양에 따라 문양석은 다음과 같이 분류 하기도 한다. ① 만상석(萬象石) : 온갖 사물의 모양이 그려진 것. 사람 . 짐승 . 조류 . 곤충류 . 풍경 . 해.달 등. ② 화문석(花紋石) : 여러 가지 꽃 모양이 새겨져 있는 것. 매화 . 국화 . 장미 . 모란 . 해바라기 등. ③ 문자석(文字石) :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 一, 二, 三, ...., 壽 . 福 등. …
  • 21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307
    물형석(物形石)  삼라만상의 어떤 개체나 그것의 일부분과 흡사하게 닮은, 문자 그대로 물형석이다. 사람이나 새 . 짐승 등 움직이는 동물, 탑이나 초가집 . 나룻배 등 고태있는 옛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돌이다. 지구상에 낯익은 존재가 무수히 많듯 물형석의 범위도 그만큼 넓다. 그런데 물형석은 그 닮은 상태가 너무 흡사한 것보다는 상징적인 것이 애착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실제의 물형(物形)의 크기보다는 작을수록 감칠맛이 있다. 또한 물형석은 정서와 추억에 얽힌 동경(憧憬)의 대상을 닮은 돌이어야 더욱 가치가 있고 아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하고 소담스런 아취(雅趣)가 있으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뚜렷한 개성을 지닌 형상의 돌이면 이상적인 물형석이라 할 것이다.추상석(抽象石)  오랜 습관의 고정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우리의 시야(視野)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상이 아닌 것으로 마음속 깊은 곳의 영감(靈感)에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돌을 추상석이라 한다. 추상적이라는 말은 비구상(非具象)의 회화(繪畵)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 어떤 사물을 볼 때, 얼른 이해가 안되면서도 그럴듯한 감동이 떠오르되 무어라 표현할 수 없으면 추상적인 것이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다. 추상석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자연경이나 형태의 테두리안에서 쉽게 알수는 없으나 어떤 미지의 형상이 축소된 것이라는 마음이 끌리면 서두르지 말고 탐석한 돌에 대해 예지의 발동을 기달릴 것이다. 추상석을 보는 관점은 그 유형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고전적인 풍조가 담긴 괴석류의 추상석, 또 하나는 현대 미술에서 발생한 오브제 풍의 추상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외형에 나타난 구분일 뿐 내적인 의미는 둘 다 동일하다고 할 것이다…
  • 20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380
    산수경석은 수석의 이상이며 수석의 주종을 이루는 것으로 수려한 자연경(自然景)의 축소판이 하나의 조그만 돌에 나타나 있는 것을 말한다. 자연의 미를 논할 때 산수(山水)의 풍치가 주축을 이루듯 수석의 주류는 산수경석에 있다. 그러나 산수경석의 이상경은 한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일각만이라도 균형있게 표출하고 있는 돌을 찾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① 산계석(山系石) : 멀리 보이는 산의 모습을 닮은 돌로 흔히 원산석(遠山石)이라고 하는데, 산용(山容)의 선이 유연해야 멋이 있다. ② 단봉형(單峰形) : 한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의 형태를 말한다. 외봉우리지만 드높은 위용과 좌우 능선의 흐름이 유연하고 안정세가 있어야 한다. ③ 쌍봉형(雙峰形) : 산의 주봉(主峰)과 부봉(副峰)이 균형있게 이루어진 것을 말하는데, 능선의 흐름은 단봉처럼 유연한 맛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봉이 좌측에 있는 것이 더 이상적이다. ④ 연산형(連山形) : 주봉을 중심으로하여 좌우 혹은 전후로 몇 개의 봉우리가 균형있게 연결된 상태의 돌을 말한다. 산세(山勢)가 박력이 있고 유연한 맛이 있어야 한다. ⑤ 편원형(平原形) : 수평으로 펼쳐진 평면이 있고 좌우의 한편 또는 후면에 봉우리가 있어 마치 드넓은 평야(平野)나 아득한 광야(廣野)를 연상케 하는 돌을 말한다. 평원석의 균형은 산봉우리와 평면이 5:1 정도의 비율이 적합하다.  ⑥ 단층형(單層形) : 몇 개의 층을 이루며 평면이 형성된 돌을 말한다. 계단식 천수답을 연상하듯 단층의 배열이 고르고 평면간에 수평이 이루어져야 이상적이다. ⑦ 섬형(島形) : 바다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섬들을 닮은 돌로, 섬도 산임에는 틀림없으나 맥(脈)의 계속성이 단절된 돌은 풍화나 파도에 씻기어 기슭이 단절된 섬이 연상되면 적격이다. ⑧ 수계석(水系石) : 자연미의 단편이면서도 물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형태의 돌을 수계석으로 분류한다. ⑨ 암초형(暗礁形) : 끊임없는 격랑과 싸우며 버티고 있는 상태를 연상할 수 있는 돌로, 석회암에서 볼 수 있다.  ⑩ 호수형(湖水形) : 돌의 일정 부분이 푹 파여 물이 고일 수 있는 형태인데, 파인 위치와 돌의 형태에 따라 호수(湖水), 소(沼), 늪 등으로 구분된다. 산정(山頂)이 파였으면 백두산 천지처럼 산정호(山頂湖)이나, 보기에 따라서는 소(沼)도 될 것이고, 평원(平原)이 파였으면 평원호가 될것이다. ⑪ 폭포석(瀑布石) : 산형(山形)을 갖춘 돌에 석영이나 방해석이 박혀 마치 폭포가 힘차게 떨 어지는 듯한 모양을 한 돌을 말한다. 직하형(直下形) . 분기형(分岐形) . 곡절형(曲折形)등으로 분류할 수 있고 두 줄기의 흰 물길이 떨어질 때는 쌍폭(雙瀑)이 된다. 국내의 폭포석 산지로는 단양과 옥천, 경북의 영양 등지인데, 여기에서 수준급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수석의 채취가 극히 어려운 사정을 악용, 자연의 폭포석이 아닌 것을 변조하여 상행위를 하는 몰지각한 일은 자연의 순수성을 저버리는 짓으로써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⑫ 계류형(溪流形) : 상류로부터 하류로 골짜기를 따라 물러 흘러내리듯 경사가 지거나, 또는 평면으로 석영이나 방해석이 박혀있는 돌을 말한다. 계류의 모습처럼 동적인 감흥을 주며, 물의 흐름과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여야 한다. ⑬ 동굴형(洞窟形) : 돌이 부분적으로 푹 파여 어두운 동굴을 연상할 수 있는 돌로, 파인 내부가 조밀하고 입구가 복잡한 것이 이상적이다. ⑭ 수문형(水門形) : 독도나 흑산도의 실경(實景)을 보듯이 돌이 양면으로 시원히 뚫려있는 형태를 말한다. 뚫린 속으로 멀리 원경(遠景)을 감상한다면 신비로을 것이다.…
  • 19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303
    수석미의 특수성  수석이란 적당한 크기의 자연석을 대상으로 그 모양이 산수의 시정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예술적인 감흥(感興)의 세계를 즐기는 취미다. 그러나,실제로 수석취미에서는 관상(觀賞)의 과정에서 여러가지 의문에 잠길수가 있다.  수석의 아른다운 미(美)란 무엇인가, 다시말하자면 "어떤돌이 수석으로서 가치가 있는가" 이것은 수석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험에서 얻는 의문이다.  수석선배나 혹은 대가를 찾아 물어보기도하고,수석입문서를 읽어 보기도 하지만, 그때의 지식으로서는 아는듯하나,실제로는 매우 이해가 가지 않는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초보인경우만이 아니다. 수석취미에 깊이 몰입할수록 한층 더 의문이 생길때가 있는것이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그것이 수석의 깊음이라 할까,매우 당혹한 문제인것 또한 사실이다.  그 원인은 수석이란 인간이 만든 공예품과 같은것이 아니라,대자연의 소산이기때문인지도 모를일이다.  이른바,자연의 무기물을 대상으로 하는 까닭에 여기에서 수석미의 특수성이 생기는 것이다. 미의 관상이라 할지라도 다른 여러 미술과 동일하게 논할수 없는것이 바로 수석의 예술이다. 사실 한 덩어리의 돌에서 한 없는 아름다운 미를 발견한다는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희노애락과 영고성쇠의 파동에 시달린 인간의 생을 초탈한 냉엄조강(冷嚴組剛)한 수석은 영원한 존재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수석은 사물이 아닌 생사를 초월한 존재인것이며,자연존재의 실상을 암시하는 상징적 대표로서,깊은 예술의 미를 내포하고 있는것이다. 객관적으로 생이 없는 자연물이라 할지언정,주관적으로는 생기바랄한것이되어 일종의 엄숙한 영기(靈氣)를 자아내는 것이다.이것이 수석이 지닌 미의 특성이라 하겠다.-1999년6월 월간취미저널 초사 안중순선생님의글 -…
  • 18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330
    이세상 많은 사람들에게는 각자가 나름대로 취미가 있을 것이고 모든 취미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탐석을 통하여 몸소 경험하고 애석생활 속에서 느낀 수석 취미생활 속에서 느낀 수석 취미생활은 자기의 건강과 활기찬 기(氣), 건전한 정신 함양에 좋다고 말하고 싶다. ●수석은 인간의 평등성이다.  사람들은 재물 명예 지위 학벌 신분 등을 저울질하듯 하지만 수석은 자연의 창조물이기때문에 명석은 누가 보아도 명석이다. ●수석 취미생활은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탐석갈 때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며 경비가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수석은 관리에 어려움이 별로 없다.  수석도 엄격히 말하면 생명력이 있는 광물이지만 란, 화초, 분재보다는 관리가 쉽다. ●수석은 볼수록 정감이 간다.  물론 사람마다 개성, 성격, 취미가 다르겠지만 인간은 태고부터 돌과는 가장 먼저 가까워졌기 때문에 돌을 볼 때 싫증이 나지않고 볼수록 정감이 갈 것이다. ●수석 취미는 자아도취이다.  수석은 사람이 자연에 대한 자아도취이며 자연의 심미안 속에서 인생을 배우고 자기의 발전을 가져오게 한다. ●수석 취미생활은 정신통일의 지름길이다.  잔잔한 강변 자갈밭이나 시원한 바닷가 자갈밭을 걷고 있을 때 무슨 잡념이 생기겠는가? ●수석 취미생활은 건강에 아주 좋다.  재물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아주 잃는 것이다.  이 말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인생에 있어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탐석활동은 현대 의학으로도 퇴치하기 어렵다는 성인병(디스크, 요통, 신경통, 고혈압, 당뇨)등을 예방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돌밭에 가서 하루종일 걸으면 운동이 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수석 취미생활은 인생에 활력을 준다.  사람에게 희망이 없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희밍이 없이 삶에 의욕을 느낄 수 있을까? 탐석행은 희망을 불어 넣어 주며 기대감을 갖게 한다. ●수석 취미생활은 기(氣)의 원동력이 된다.  사람이 모든 잡념을 버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여 체력을 연마하면 기는 왕성해 질 것이다.  백만 수석 동호인들의 생각이 다르고 주장이 다르며 견해가 다르겠지만 이 글이 수석 동호인들의 애석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출처:월간 수석 1992년 3월호에서(글:오양환)…
게시물 검색







Copyright © 수석넷.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