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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계 동향(動向)

Total 62건 4 페이지
  • 17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489
    어떤 분야의 문화라도 세대를 거듭하면, 발전하든 퇴조하든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후세에는 다른 모습으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 발상지에서 또 다른 장소로 옮아 갈 때 라든가, 이를 받아 들이는 환경과 생활 습속(習俗), 그리고 자기네 민족성과 생활관에 맞추어 소화 할 수 있도록 가미하여 원류(源流)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형태로 탈 바꿈 하여 마치 자기네만의 고유 전래문화인양 착각하고 이를 미화하는 수 가 많다. 수석분야도 오늘의 것과 옛 것과의 사이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취향이 달라졌고 대륙에서 한반도로 유입 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수석(水石)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수석의 용어, 수석의 형태, 수석으로서 평가되는 석질 등의 요구조건이 변질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예로서가) 괴석류를 숭상하던 풍류가 변하여 석가산(石假山)을 정원에 꾸미고 완상 나) 하나의 괴석을 크기에 관계치 않고 석분과 좌대에 올려 놓고 완상(玩賞)다) 수반 등에 여러 개의 돌을 결합하고 나무를 배열하여 분경(盆景)을 감상라) 자연경을 닮은 하나의 돌을 실내에서 완상하는 수석(水石)취미로 발전 마) 중국은 괴석류에 기호하던 관계로 석질이 낮은 태호석(太湖石)류를 선호바) 한국과 일본에서는 수석의 근본적 요소로 돌의 <질>을 강조하며 애호사) 따라서 화산 용해암, 석회질, 석영과 운모함유석, 등은 애완석 에서 제외아) 미국 북가주의 애석인들은 산(酸)에 약한 사막석(沙漠石)을 선호 한다자) 수석의 명칭도 중국은 수석(水石), 공석(供石) 일본은 수석(水石)으로 일관함차) 한국은 수석(水石), 수석(壽石)을 병용하고 있으나 목숨 수의 수석이 대세임카) 水石과 壽石의 차이와 우리나라에서 목숨 壽 자를 쓰게 된 유래는 후에 기술타) 수석잡지이름도 일본에서는 당대의 유명 애석인 이며 분재가인 ‘무라다 겐지’씨(村田憲司)가 수석(樹石)이라는 분재와 수석전문지를 발행하던 것을 그의 아들 ‘무라다 게이지(圭司)’ 씨가 이어서 계승하여 오다가 애석계(愛石界)로 개제(改題) 하였음.파) 한국에서는 <분재와 수석>이라는 격월간 잡지를 고 장준근씨가 발간 하다가 본 필자와 합동경영 하면서 <자연미생활>(自然美 生活)이라고 개제 한바 있음.하) 그 후 여러 가지 잡지와 수석관련 책들이 발간 되었으나 현재는 월간 <수석>지가 널리 보급 되고 있다. (본 란은 원래의 원고에 일부 보충 한 것임)                            수석취미도 앞에서 언급한대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고 있지만 지역과 민족성에 따라서도 그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송대, 당대, 명대를 이어오면서 깊은 산중의 오묘한 검산(劍山)준령(峻嶺)의 경치에 매료되어 하나의 돌에 여러 개의 가파른 돌기(突起)즉 검봉(劍峰)을 연상케 하는 돌을 완상 하여왔다. 물론 한국에서도 웅장한 연봉과 산맥을 이루는 대륙적 험준한 산수경을 닮은 산악형 수석은 물론 괴석류도 좋아하고 있지만 중국과는 달리 탁 트인 평야 저 멀리 보이는 원산의 경치를 연상하는 이른바 원산형(遠山形) 돌을 선호하는 한편 넓직 하게 전개되어있는 평원형 (平原形)돌이라던가 토파석(土坡石)류를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빼어난 검산준령 같은 돌을 입수 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겠으나 역시 한국인의 온유함과 너그러움이 중국적 험준함보다는 평화적인 것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경궁 등 우리 고궁에는 산수경석류가 아닌 괴석 등 기이(奇異)하게 생긴 돌들을 화강암 석재를 조각하여 받침을 만들어 장치한 것을 보아도 궁중 정원석으로 괴석을 즐겨 완상한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괴석시”도 아마 비원 안의 세워져 있는 괴석을 보고 읊은 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는 1973년경에 비원의 10여 개의 괴석이 넘어져있거나 혹은 개울에 버려져 있는 장면을 촬영하여 당시의 문화재 관리국에 제보하여 바로 세워 놓게 한 바 가있다. 일본 애석가들도 우리의 수석문화를 전수 받음으로써 우리들의 수석경향과 비슷하여 몇 세기 전 만 해도 웅장한 돌을 숭상해 왔지만 역시 섬 나라 라는 특성 때문인지 지금은 섬 (島嶼)형과 갯바위(荒磯=아라이소)형 또는 초가집형(茅屋=구즈야)형과 나직하고 잔잔한 해변풍경이 담긴 돌을 애완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의 돌이 작아지고 얄팍해짐에 따라서 수반 자체도 깜찍하고 얄미울 정도의 얇은 것을 사용하고 있다.한국 애석인들도 일본식 취향을 따라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은 한국은 돌도 대륙적인 것을 선호하고 수반 등 도 두툼하고 넉넉해 보이는 것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일본인과의 대조적 양상이다 자료: http://blog.daum.net/boolamsan/ …
  • 16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32
    탐석하러 돌밭에 나가보면 수억만(數億萬) 개(個)의 돌이 모두 자기(自己) 나름대로 자태(姿態)를 나타내고 있다. 이 중 자기 마음에 드는 돌을 줍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수석 (壽石)하는 사람들은 흔히 일생(一生) 일석(一石)이라는 말을 한다. 평생(平生)동안 돌을 찾아 헤매어도 좋은 돌을 얻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우리 나라는 지질구조 (地質構造)가 오래된 시생대(始生代)에서 신생대(新生代)까지 분포(分布)하여 암석(岩石)의 종류(種類)가 다양(多樣)할 뿐 아니라 하천(河川)의 흐름이 완만하여 좋은 수석(壽石)이 많이 생산(生産)될 수 있는 천연(天然)의 보고(寶庫)이다.  그리고 수석 (壽石)을 아는 가장 빠른 길은 첫째, 돌을 많이 줍는 길이다. 자기가 주운 돌을 좌대나 수반(水盤)에 연출(演出)시켜 놓고 보아서 싫증이 나지 않으면 일단 좋은 돌이다.  둘째 , 수석(壽石) 전시회(展示會)와 다른 사람의 돌을 많이 보고 수석(壽石)에 대한 견문(見聞)을 넓히는 일이다.  셋째 , 수석(壽石) 동호인(同好人)들과 자주 만나 대화(對話)를 통해 수석(壽石)의 세계(世界)를 넓히는 길이다.  넷째 , 수석(壽石)에 대한 고전(古典)이나 서적(書籍)을 통해 선인(先人)들의 수석관(壽石觀)을 이해(理解)하고 심미안(審美眼)을 기르는 것 등이다.  우리가 복잡한 세상 (世上)을 살다 보면 마음이 허전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넓은 돌밭을 거닐거나 탐석(探石)한 돌을 보고 있으면 이 공허(空虛)한 마음을 밝게 해방(解放) 시켜 준다.  우리의 심령 (心靈)을 정화(淨化) 시키고 풍요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 수석(壽石)은 좋은 취미(趣味) 생활(生活)이 될 수 있다.  돌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 (自然)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결국 인생(人生)을 사랑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자료: 석정수석관 http://www.sjgallery.com/…
  • 15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38
    수석이란, 하나의 자연물을 대상으로 그 모양과 풍정(風情)에서 우러나오는 산수(山水)의 미(美)를 연상하여 그 속에서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즐기는 취미라고 정의할 수 있다.이는 선인(先人)들의 신선사상(神仙思想)과 풍류의 멋을 현대인들이 그 일부나마 이어받은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예술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있었다.그러므로 수석은 또한 돌을 단순한 돌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수석은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유산이라고도 하고 신이 만들어 낸 예술품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힘으로는 창조할 수 없는 수석의 세계는 철학의 빈곤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비하고 오묘한 동양 사상을 고취시키는데 일조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작은 돌 속에서 우주를 생각하고, 산수의 미를 생각하며 새소리를 듣고, 그 속에 꽃이 피고 있음에 짙은 향내를 맡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수석인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연을 가까이 하고 그 안에서 진리를 깨닫는 동양 사상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청풍수석과 꽃…
  • 1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57
    정신 문화는 사고와 여유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었을 때 빛을 발하게 마련인데 문명의 발달과함께 정신 문화의 퇴색은 퇴폐 문화를 잉태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석을 통해 자연을 즐기는 여우를 얻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정신 문화가 조금이나마 회생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조이다.물론, 풍요로운 사회의 부산물인 스트레스를 여러 가지의 취미와 여가 선용으로 해소하고 있다. 즉, 등산이나 낚시,여행, 바둑, 도는 스포츠, 우표, 고화, 민예품 등 취미 활동도 여러 가지가 있다.그러나 풍류를 즐기고 예술적 감흥을 일으키는 수석 취미는 감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수석의 취미는 동양 풍류의 참멋이라고 곧잘 표현되기는 한다. 동양 풍류는 동양의 사상과 직결된다. 즉, 동양의 사상은 대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연결시켜주어 자연의 신비와 오묘한 이치를 깨닫게 함으로써 자아 의식을 고취시키는 사상으로, 한편으로는 이 사상에 뻐져들면 빠져들수록 즐거움이 더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그래서 풍류의 멋이 듬뿍 담긴 한 점의 돌에서 미학을 탐구하는 즐거움이 없다면 수석 취미는 무의미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수석 취미의 즐거움을 찾아본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가.첫째 탐석의 즐거움일상 생활에서 오는 심신의 피로와 권태를 극복하게 위해 배낭 하나 짊어지고 자연 속에 뭍혀 무심의 세계로 돌아가 탐석하는 행위는 확실한 풍류를 즐기는 멋이 있다.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자연은 어머님의 품 속과도 같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렇게 어머님의 품속 같은 자연과 호흡하며 혼연 일체가 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즐거움 속에 여러 가지의 득이 있다. 1)탐석으로 건강을 증진시킨다.2)수석감을 찾기 위해 집중력을 키우게 된다.3)출행(出行)으로 천연의 자연미를 감상한다.4)지리적 견문이 높아진다.5)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으며 경비가 적게 든다..6)영원히 간직하고 자손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수석감, 즉 소득(?)이 있다.—최근 상품으로도 가치가 있기 대문이다. 나.둘째 감상의 즐거움애석인이면 누구나 한번쯤 좋은 수석감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을 맛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수석의 감상는 한 개의 돌을 예술의 경지에까지 승화시키는 고차원적인 미학이다. 미를 탐구하는 즐거움은 미학을 추구하는 학문과 같다. 수석 감상의 즐거움도 이렇게미학을 추구하는 학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추측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정신 세계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1)감상함으로써 철학을 배운다.2)고귀한 품성을 기를 수 있다.3)마음의 고통과 번민 속에서 충분한 시간을 얻을 수 있다.4)상대가 없어도 조용히 혼자 즐길 수 있다.5)취미의 극치감을 맛볼 수 있다.6)지질의 변화와 암석의 성질을 연구할 수 있다. 다.셋째 석우를 얻은 즐거움, 자랑하는 즐거움수석 취미를 즐기는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다면 그것은 수석이 아닌 석우를 알게 된다는 점이다.수석은 객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체에 있다고 할수 있다. 그러면 주체는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수석을 즐기는 사람, 바로 애석인 여러분이다. 그래서 수석을 얻은 것보다 석우를 얻은 것이 더욱 자랑스럽다 라고 말할수 있다.서로 탐석한 돌을 자랑하며 풍정에서 우러나오는 수석에서 시정을 읽고 그것만으로도 자라 뜻을 같이한 사람들끼리 모여 전회를 개최함으로써 저변 확대도 가져올수 있다.탐석의 고행으로 얻어진 한 점의 돌을 남에게 보여 주며 자랑하는 것도 수석의 즐거움이라 하겠다. 마.넷째 양석의 즐거움애석 생활의 가장 높은 경지는 양석이라고 할 수 있다. 양석은 돌의 품격과 관상 가치를 더욱 높이는 절대적인 과정으로 세월과 정성, 그리고 인내심이 요구되는 그야말로 수석 취미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돌은 생명이 없는 물질이지만 양석은 생명이 없는 돌에 끝없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탐석하여 갓 주워온 돌은 시작이다. 끝이 있다면 5년-10년 동안 양석한 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월로 애석인은 양석하는 과정을 [자식을 키우는 즐거움과 같이 양석의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오랜 세월 동안 양석 과정에서 조금씩 좋은 돌로 바뀌어 가는 돌의 표피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다시 한 번 찬탄을 하게 되고 우리는 비로소 양석을 통하여 수석도(壽石道)라는 개념을 인식하게 된다.…
  • 13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318
    제목 : 허련 괴석도 설명 : 종이에 수묵, 49.6×31.3 cm, 호암 미술관 소장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크기 : 284 × 446 (pixel) 용량 : 49.7 KB 화가 : 허련(許鍊) 부제 : 노경(老境)의 미 돌에 대한 동양인의 관념과 애착심괴석도(怪石圖)는 괴석을 화면 가득히 그리고 있다. 서양화와는 달리 이런 종류의 그림은 동양에서는 보편적이다. 돌을 그리는 것은 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돌을 애착하는 마음의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괴석도〉를 애호하는 배경에는 어떤 생각이 작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허련은 스승 김정희가 “압록강 동쪽으로 소치(허련의 호)를 따를 만한 화가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다. 여기서 살펴 볼 〈괴석도〉는 그의 많은 작품 중 수준급의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크기는 세로 49.6cm, 가로 31.3cm 이다. 〈괴석도〉의 바위는 온갖 풍상을 겪으며 군더더기를 다 떨어버린 천지의 뼈대 모습이다. 화가는 조형화된 것이 아니라 형성되었다고 해야 할 이 괴석의 경이로움과 오묘함을 화폭에 담으려고 노력했을 것이 분명하다.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돌 하나가 무슨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 않으나, 화가 허련은 괴석에서 자연과 예술의 지극한 경지를 보았던 것이다. 서양이 훌륭한 암산(巖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암석 화법이 발달하지 못하고 오히려 동양에서 발달한 까닭은, 동양에는 돌을 애착하는 마음이 있고, 서양에는 그런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돌은 겉보기에 그저 평범할 뿐 관심 끌 만한 요소가 없다. 그러나 동양의 사람은 그 평범하고 특별한 경관이 아닌 것에서 인생과 자연의 거짓 없는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동양에서 돌에 대한 애착은 먼 옛날부터 시작되었다. 중국 육조 시대에는 이미 그 소식이 나타나고 있었다. 동진(東晋)의 화가 고개지(顧愷之)가 사람의 상(像)을 바위 속에다 그린 일이 있었고, 송나라 때 미불(米)이 바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바위를 형님이라 부르며 절을 했다는 고사(故事)도 유명하다. 옛 화가나 선비들이 돌을 애착한 이유는, 돌은 자연의 삼라만상 중에서도 가장 불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송나라 화가 곽희(郭熙)는 그의 〈임천고치 林泉高致〉에서. “암석은 천지의 뼈이다.”라고 하면서 돌은 자연을 지탱하는 중심적인 형체이며, 영구적인 형질임을 강조하였다. 고려말의 선비 이곡(李穀)은 그의 〈석문 石問〉이라는 글에서 “암석은 견고 불변하여 천지와 함께 종식되는 것, 두터운 땅에 우뚝하게 박히고 위엄 있게 솟아서 진압하며, 만 길의 높이에 서서 흔들어 움직일 수 없는 것, 깊은 땅 속에 깊숙이 잠겨서 아무도 침노하거나 제압할 수 없는 존재”라 하면서 바위의 덕을 칭송하였다. 조선의 선비 윤선도는 그의 저작인 〈오우가〉에서 “고즌 무슨 일로 퓌여서 쉬이 지고, 플은 어이하여 프르느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아닐 손 바회뿐인가 하노라” 라면서 바위의 불변성을 상찬(賞讚)하여 마지 않았다. 자연계의 꽃과 풀이 자기 본래의 의지를 지키지 못하고 계절과 타협하거나 굴복 하지만, 바위는 그런 것을 초월해 태초의 견고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벗삼을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돌을 애착하는 마음과 동양 전통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유교 사상 사이에 서로 통하는 점은 무엇일까.  돌에 대한 애착심과 유교사상과의 관련정통 수묵화에서 암석화(岩石畵)를 그린 사람들은 주로 사대부 계층으로 당시의 지도층이었다. 유교적 윤리는 사대부들이 스스로 갖추어야 할 인격 수양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들은 역경 속에서도 굽힘 없는 지조와 절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청빈한 기개, 그리고 남부끄러움 없는 양심을 생명처럼 소중히 하였다. 그런 선비들에게 있어서 돌은 언제나 인간에게 인간 조건의 불완전성·변절성을 초월한 어떤 절대적인 힘을 계시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것은 바위 자체의 현실적 실존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유교적 가치관에 기초한 선비들의 시각을 통해 터득된 것이었다. 그들은 바위를 통해서 개인의 인격 수양에서 비롯하여 사회적 윤리관까지도 배양할 수 있는 교훈적인 의미를 찾아내었다. 옛날 미불이 바위를 형님이라 부르며 절을 한 것도 바위에서 인간의 변절성을 초월한 어떤 항구적 힘과 윤리적 교훈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화가들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것도 희귀한 것도 아닌 평범한 바위를 즐겨 그렸던 것은 바위가 상징하는 그와 같은 윤리적 특성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화가들은 바위를 미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윤리적 가치관에 침잠하여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이것은 같은 암석이지만 자갈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뜻이 명백해 진다. 화가들이 자갈을 그리지 않는 것은 자갈에서는 그러한 윤리적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작화의 의향군더더기 없는 영구적 형질로써, 천지를 지지하는 중심적 형체로서의 바위는 유교 윤리와의 관련성뿐만 아니라 그림 공부를 시작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예로부터 그림을 시작하는 사람은 먼저 바위를 그리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한 것은 바위가 지닌 이러한 성격 때문이었다. 심숭건(沈崇騫)이라는 사람은 그의 저작인 〈개주화학편 芥舟畵學編〉에서 그림을 공부하는 순서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그림을 공부함에 있어서는 제일 먼저 암석을 묘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붓을 다루는 방법은 암석보다 더 어려운 게 없고, 또 암석처럼 형태가 완비된 것이 없으니, 암석을 묘사하는 솜씨가 익숙해지면 다른 것은 모두 이에 따라 만족하게 그릴 수 있다.” 암석은 모든 형체 중에서 가장 정제된 것이고 천지의 골간(骨幹)이 되는 것이므로 암석을 묘사하는 방법에 정진하면 다른 모든 형체는 이를 근본으로 해서 충분히 그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이렇듯 제일 먼저 암석을 대상으로 연습하라고 가르치는 데 대하여 서양에서는 나체를 대상으로 해서 연습하라고 한다. 모든 것이 다 나체 속에 있으므로 나체에 숙달을 하면 다른 것을 다 그릴 수 있다고 한다. 서양에서 여성의 나체를 모든 형체의 근본으로 보고, 풍경마저도 거기서 끌어내려고 할 때 동양에서는 모든 형체의 근원을 암석에서 인식하여 인간의 모습마저도 돌 속에서 찾아보려고 하였으니, 이것으로도 동양과 서양의 의향(意向)이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감상〈괴석도〉의 바위는 영원성·불변성·정제성을 간직한 채 적막 속에 싸여 있다. 적막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의 상념에 끌어들인다. 그러한 상념에 사는 마음은 노경(老境)의 미(美)에 사는 마음이다. 노경의 미는 평온하고 고적하고 맑은 아름다움이고, 한 개의 바위에서도 자연의 섭리와 인생의 의미를 느끼는 그런 경지의 아름다움이다. 적정(寂靜)한 고태(古態)와 항구적인 형태의 바위를 그린 허련의 〈괴석도〉는 동양 특유의 노경의 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그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네이트 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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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415
    ▣ 조석 여부와 돌의 출처를 반드시 문의하고 확인한다. ▣ 구매 후 일정한 기간 안에 환불할 수 있음을 확약하여 둔다. ▣ 누가 얼마에 사갔고, 이 돌은 얼마에 매입한 돌이다라는 말을 너무 믿게되면 비싸게 구매할 가능성이 크다.▣  성급하게 가격을 결정하지 않고 몇 번에 걸쳐 돌을 살펴 본다 ▣  주머니 사정에 맞게 구매한다 ▣  여러 가게를 두루 돌아다녀 본다. 터무니 없이 비싼 곳이 있고, 생각보다 저렴한 곳도 있다. ▣  판매자는 치켜 세우고, 구매자는 흠을 잡아 깍아 내려야 원만한 가격에 살 수 있다. ▣  구매 후 소장하다가 재판매할 경우 본래의 가격을 받지 못함을 생각한다. ▣  마음에 드는 돌 옆에 있는 돌에 관심을 보이다가 나중에는 찍은 돌을 사는 것도 한 방법 출처: http://blog.daum.net/jrsong3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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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48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자랑스러운 수석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렇지만 외래의 침략기를 거치면서 그 맥을 잃어버리고 방황하여 왔습니다. 때문에 선조님들이 추구하였던 전통수석문화의 이해에 혼돈을 이르킨게 사실입니다.그것은 애석문화의 고전인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양화소록이란 말 그대로 꽃을 기르는 작은 책자라는 뜻인데 이 안에 괴석(怪石)을 소개하는 글이 끼어있는것입니다.돌이란 본래 무생물로서 기른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저자는 돌을 마치 생명이 있는 생물처럼 표현하고 있는것입니다. 여기에는 노태수석(老苔壽石)이란 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생물중에 수명이 가장 긴 것은 돌에 기식하여 자라는 이끼를 표현한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돌에 기식하여 이끼가 한번 자라기 시작하면 그 돌이 부셔질때 까지도 이끼는 죽지 않습니다.불길같은 햇볕이 내려 쪼이는 여름철에도 습도만 적당히 유지되면 창연한 모습을 볼 수 있고 영하의 혹한을 견디고도 이끼는 계절과 관계없이 싱싱한 모습을 보여줍니다.그래서 돌을 석수만년(石壽萬年)이라 한것입니다.그러니까 이끼가 끼지 않은 돌만 가지고는 '석수만년'이라 는 표현이 부적합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끼를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이 필요합니다. 생명은 물로부터 제공받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산수경정석을 수반에 올려 감상하면서 살아있는 돌이란 표현을 하기 위해서 물수(水)를 내세워 수석(水石)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를 일부에서는 산수경석의 약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돌의 모양이 아무리 잘생겼다 하더라도 양석이 되지 않은 돌은 명석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한편으로 중국에서 수석을 기석(奇石)이나 괴석(怪石)으로 부르는것은 형태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지 고태를 으뜸으로 의미한다고는 볼 수는 없습니다.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기암괴석(奇岩怪石)에서 따온 용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만약 돌의 굳은 성질만을 '석수만년'으로 비유하였다면 돌보다 더 강한 보석이 있기 때문에 수석이 최상의 수명의 상징이란 비유가 맞지 않습니다. 때문에 정석(庭石)과 실내에서 완상하는 수석과는 차이가 많습니다.양화소록(養花小錄)우리의 고전을 학계의 분야별 전문가가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새롭게 번역하고 해설한「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고전」제1권 『양화소록』.이 책은 학문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났던 강희안의 저서로,꽃과 나무의 특성, 품종, 재배법을 자세하게 수록한 전문원예서이다.이 책은 <양화소록>에 담긴 내용을 풀이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고려와 조선 시대의 다양한 문헌을동원하여 우리나라의 꽃과 분재의 문화사로 확대했다.먼저 <양화소록>의 원문을 번역하여 보인 다음, 조선과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 그와 관련된 정보를다채롭게 보충하여 설명했다.특히 고려 혹은 조선의 문인들이 꽃과 나무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잘 나타난 시와 문장을 수록하여꽃과 나무, 그리고 이를 담은 화분이 하나의 문화사로 읽을 수 있도록 도왔다. 저자 : 강희안 저자 강희안(姜希顔)은 조선 초기의 학자. 자가 경우(景遇), 호가 인재(仁齋)이며 본관은 진주이다.문과에 급제한 후 주로 규장각에서 근무하며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주석 작업에 참여하였고 『운회(韻會)』, 『동국정운(東國正韻)』 등의 편찬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날마다 글을 읽고 꽃을 키우는 일을 좋아하여 『양화소록』을 편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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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37
    수석(水石)이란 말은 원래 자전적(字典的)으로는 물과 돌이 어울려진 경치로서 때때로 천석(泉石) 이라 고도 하며 산수의 경치를 이르는 말 입니다. 산석유수(山石流水)의 정경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조상들이 그와 같은 산수경치를 사랑했던 증거로 전국 행정구역 명칭에 水石 또는 泉石 이라는 산간지방의 동리 이름이 80여 군데나 있고 돌 석(石)자가 붙어 있는 고을이 400여 곳이나 되는 것만 보아도 우리 민족이 물과 돌이 어울려진 경치를 흠모하며 돌을 얼마나 좋아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조상들이 그와 같은 산수경치를 사랑했던 증거로 전국 행정구역 명칭에 水石 또는 泉石 이라는 산간지방의 동리 이름이 80여 군데나 있고 돌 석(石)자가 붙어 있는 고을이 400여 곳이나 되는 것만 보아도 우리 민족이 물과 돌이 어울려진 경치를 흠모하며 돌을 얼마나 좋아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水石이란 말은 중국과 일본 에서도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옛 선비들과 시묵객(詩墨客)들도 산수경치를 닮은 돌을 수집하여 山水景石 이라 하여 수반에도 놓고 분에도 올려 놓아 감상 하였던 기록이(東文選集등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수석감상의 연유는 심산 유곡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을 애모하는 나머지 정원에 가산(假山)도 조성하고 돌을 모아 쌓아 올려서 석가산(石假山)을 만들어 감상을 하였으나 좀더 몸 가차 이에 두고 볼 수 있는 방법으로써 하나의 돌에 산수경치가 나타나 있는듯한 돌을 채집하여 완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수석 완상 풍류는 옛 중국 땅에서 번성했지만 우리 조상님과 많은 옛 선비들이 수석을 사랑 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완당 김정희, 단계 김영면, 강희안, 서산대사 ,승전법사, 이형상,등)  그러나 취미의 분야에서의 수석(水石)은 위의 정의에 나타난 산수경치를 빼어 닮은 모양의 돌을 수집하여 완상하는 대상물을 水石이라 하고, 그런 돌을 수집하고 양석(養石)하고 연출하여 완상(玩賞)하는 취미활동을 수석취미 라고 하고 있습니다.  근년에 와서 우리나라에 수석취미 활동이 왕성 해지면서 산수경석(山水景石)위주의 취미뿐만이 아니라 무늬돌, 색채돌등 미석(美石)류와 물형석, 추상석(오브제이)등도 함께 감상의 대상으로 자리매김 함으로써 돌 취미의 장르가 넓어지자 水石을 목숨 수 자 의 壽石으로 부르기 시작 했습니다. 돌은 형성 되고 나서 오랜 세월을 거쳐왔기에 석수만년(石壽萬年)이란 말을 따라 목숨 수 자를 붙이게도 되었고 어떤 民畵 등 에도 壽石 이라고 畵題가 붙어있는 것에 착안하여 수석잡지 발행인이 수석으로 못박아 보급 하기 시작하자 이제는 수석취미는 壽石으로 통용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산수경치를 닮은 수석은 여전히 물 수 자의水石으로 부르는 것이 원칙입니다 - 웹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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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79
     1976년 분재 수석 9.10월호에 실린 서울 종로의 석심과 대전의 만석당 수석가게 광고입니다지금까지 운영이 되고 있다면 수석TV로 연락 주시길 기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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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29
     분재수석 1976년 9.10월호에 실린 애석백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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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22
    분재수석 1976년 9.10월호에 실린 목포나석회 지상전 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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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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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7 조회 1597
     1970년 5월 19일 매일경제신문 5면, 직업전선이라는 코너에서 "수석수집업"을 소개하고 있다 [분재수석 1974년 12월/75년 1월호] 115쪽, 전국의 수석가게라는 기사에서 대구의 리어카 돌장사를 소개하고 있고, 실제로 리어카에 수석을 싣고 다니며 팔고 있는 사진까지 실려 있어, 당시의 수석 열기가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실감할 수 있다. 자료출처: 별무신통 블로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apksc88&logNo=50112107272&categoryNo=0&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1&postListTopCurrentPage=1&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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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5 조회 265
    수석의 정의  수석(壽石)이란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적당한 크기 - 한 사람이 들 수 있는 정도 - 의 순수한 자연석(自然石)으로 대자연의 경치를 축소한 돌이나 어떤 형상과 닮은 돌 또 는 돌에 박힌 문양과 색깔이 아름다운 것 그리고 무엇이라 표현하긴 힘들지만 친밀함과 오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추상적인 돌 등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돌 중에서 질이 좋고 특정한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석은 수석이 될 수 있다.  명석감상법흔히 천하의 명석, 일생 일석 이라고 말한다. 수석은 자연의 조화로운 작용에 의해 빚어진 것이므로 인간이 만든 예술품과 같은 조각품과는 다르다. 이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결함이 있을 수 있으나 그 결함 속에서 자연의 오묘한 작용을 이해하고 감상자의 상상이 개입하여 참다운 수석 감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의 미흡한 점은 자연의 애교로 보고 폭넓게 관용해 주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산수경석의 원형인 원산형을 기준으로 명석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기술해본다 1)반드시 자연석일 것2)산의 실경을 연상할 수 있어야 할 것3)적당한 크기라야 할것.4)색의 농도가 짙어야 할 것5)뒤로 넘어질 듯한 형상이 아닐 것6)적당한 높이이어야 할 것7)삼각형이 아닐 것8)돌갗에는 고태가 풍겨야 할 것9)질이 좋고 기름기가 흐르는 듯할 것10)좌,우 기슭이 안정감이 있을 것11)능선의 굴곡이 부담스럽지 않을 것12)쌍봉이라면 주봉과 부봉이 있을 것13)산이 앞뒤에 있다면 주봉이 뒤쪽에 있어야 할 것14)뒷면이 낭떠러지가 아닐 것15)돌에 흠이 없어야 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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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5 조회 220
    유래석(由來石) 이야기  남송때 두관의 운림석 보에 『괴석은 굳고 곧은 덕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은 참으로 군자의 벗이됨이 마땅하다』는 괴석을 예찬하는 기록이 있는데 지금부 터 약8백년전의 석보로서 각종 기암괴석을 1백 30항목으로 분별하고 산지 소개 도 세밀하게 기술한 문헌으로 전한다. 수석취미의 기원을 더듬어보면 첫째, 자연미 애호의 민족적 성정, 아름다운 국토에 태어나서 온화스런 자연 속에서 살아온 우리민족 특유의 심미감각 그것이 취미의 모체일 것이 다. 둘째, 중국에 있어서의 선승이나 문인들의 돌의 영향을 선의 수업을 위해 중 국에 건너갔다 귀국한 고승 몇사람이 배석의 기풍을 전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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