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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계 동향(動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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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5 조회 185
    수석(水石)이란 말은 원래 자전적(字典的)으로는 물과 돌이 어울려진 경치로서 때때로 천석(泉石) 이라 고도 하며 산수의 경치를 이르는 말 입니다. 산석유수(山石流水)의 정경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조상들이 그와 같은 산수경치를 사랑했던 증거로 전국 행정구역 명칭에 水石 또는 泉石 이라는 산간지방의 동리 이름이 80여 군데나 있고 돌 석(石)자가 붙어 있는 고을이 400여 곳이나 되는 것만 보아도 우리 민족이 물과 돌이 어울려진 경치를 흠모하며 돌을 얼마나 좋아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조상들이 그와 같은 산수경치를 사랑했던 증거로 전국 행정구역 명칭에 水石 또는 泉石 이라는 산간지방의 동리 이름이 80여 군데나 있고 돌 석(石)자가 붙어 있는 고을이 400여 곳이나 되는 것만 보아도 우리 민족이 물과 돌이 어울려진 경치를 흠모하며 돌을 얼마나 좋아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水石이란 말은 중국과 일본 에서도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옛 선비들과 시묵객(詩墨客)들도 산수경치를 닮은 돌을 수집하여 山水景石 이라 하여 수반에도 놓고 분에도 올려 놓아 감상 하였던 기록이(東文選集등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수석감상의 연유는 심산 유곡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을 애모하는 나머지 정원에 가산(假山)도 조성하고 돌을 모아 쌓아 올려서 석가산(石假山)을 만들어 감상을 하였으나 좀더 몸 가차 이에 두고 볼 수 있는 방법으로써 하나의 돌에 산수경치가 나타나 있는듯한 돌을 채집하여 완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수석 완상 풍류는 옛 중국 땅에서 번성했지만 우리 조상님과 많은 옛 선비들이 수석을 사랑 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완당 김정희, 단계 김영면, 강희안, 서산대사 ,승전법사, 이형상,등)  그러나 취미의 분야에서의 수석(水石)은 위의 정의에 나타난 산수경치를 빼어 닮은 모양의 돌을 수집하여 완상하는 대상물을 水石이라 하고, 그런 돌을 수집하고 양석(養石)하고 연출하여 완상(玩賞)하는 취미활동을 수석취미 라고 하고 있습니다.  근년에 와서 우리나라에 수석취미 활동이 왕성 해지면서 산수경석(山水景石)위주의 취미뿐만이 아니라 무늬돌, 색채돌등 미석(美石)류와 물형석, 추상석(오브제이)등도 함께 감상의 대상으로 자리매김 함으로써 돌 취미의 장르가 넓어지자 水石을 목숨 수 자 의 壽石으로 부르기 시작 했습니다. 돌은 형성 되고 나서 오랜 세월을 거쳐왔기에 석수만년(石壽萬年)이란 말을 따라 목숨 수 자를 붙이게도 되었고 어떤 民畵 등 에도 壽石 이라고 畵題가 붙어있는 것에 착안하여 수석잡지 발행인이 수석으로 못박아 보급 하기 시작하자 이제는 수석취미는 壽石으로 통용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산수경치를 닮은 수석은 여전히 물 수 자의水石으로 부르는 것이 원칙입니다 - 웹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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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05 조회 212
    돌이 출세하는 길  흔히 좋은 돌만 보면 명석이라 운운한다. 필자도 십여년 돌을만져 왔지만 또 명석 하나 구해 본 일도 없거니와 또 명석을 가져본 일도 없다. 무척 이름 있는 돌을 갖고자 하였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못했다. 지금 곰곰히 생각하니 너무 우리의 돌에 역사가 짧고 또한그 만큼 돌이 출세할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했다고 본다. 다만오히려 내가 욕심이 많아서 출세 시킬 수 있는 곳에 많이 나누어 주지 못하고 흔자만 쌓아두고 즐겨 왔던게 오히려 출-세의 갚을 막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라도 늦지 않게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도록 하여, 재미있는 이야기와 갖가지 이력이 붙게 되고 가진 사람의 인격과 더불어 유명해지면 명석이 되지 않겠나 싶다.  아무리 좋은 돌을 탐석하였다고 하더라도 자기만 갖고 아무리 자랑을 한들 결국 그 사람의 자랑이지 돌 자체의 자랑거리는 못 되리라 ’생각한다. 역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사이에 악평을 받거나 호평을 받거나 간에 어느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국 애석가라면 다 알 수 있을 정도가 되고 아울러 어떤 공정한 평가가 내려지면서 하나의 역사성과 유래가 따르게 될 때에 모름지기 명석이라는 호칭이 붙지 않겠나 싶다.  단순하게 지상에 소개되고 전시장에서 절찬을 받더라도 한 사람의 품안에만 감춰져 있으면 전국에 알려지는 명석이 되기란 힘들 것이다. 여러 사람의 품속을 거치고 여러 사람 손에 돌고 또 여러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하는 동안에 어떤 계통 있는 내력과 인연을 말하게 되어야 그 돌에 빛이 난다. 탐석하던 고심담과 질이니 형태니 하여 자랑하는 것만으로서는 그 돌이 유명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더듬한 돌을 다 버리고 명석만 간추려 놓았다 하는 이야기을을 가끔들을 때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버려진 돌 중에 명석이 없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甲이 고양이라고 본 돌을 乙은 범이라고 보는 수도 있다. 또 곰이나 쥐로도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요는 어느 식으로든 만인이 공인할 수 있는 형상을 찾아내는가가 문제이다.  필자가 갖고 있는 돌 중에는 아무리 봐도 명석은 있을 것 같지 않으나 돌로 인하여 생긴 설화는 하나하나 따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불출하여 아직까지 해외여행도 못해 보고 또 높고 고귀한 사람도 대해 보지 못했으나 내가 주운 돌이 멀고 먼 나라나 덕망 높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얼마나 사링을 많이 받을 것이며 어떻게 출세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내 뜰안에 있는 돌들을 볼 때마다 내가 인색하여 너희들이 출세를 못하고 있구나 함을 항상 생각한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빨리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을 깊게하여 만인의 귀여움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자연적으호 명석 이라는 칭호도 붙게 될 것이다. 결국 돌은 좋고 나쁘고 보다는 어떻게 해서 그 돌에 명성이 높이 나나 안나나에 따라 돌의 출세길이 좌우될 것이다.  돌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돌을 주울 때 명당에서 명석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맑은 냇가에 다듬어 넣어 둔 것도 아닐진대, 결국은 우리의 보는 눈이 끌려 한 돌을 주워서 먼 거리까지 운반하여다가 애완 해 보는 것이지만 이 취미는 세상에 나 혼자만이 가지고 있다 생각하면 이런 것을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타인으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음으로써 흥취가 있다. 그러므로 고매한 인격과 덕망을 가진 인사들의 얀목에 의하여 그 깊이를 더 할 수 있다.  되풀이 하면서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서로 인정의 교류보다도 돌들의 교류가 많이 있음으로써 우리 나라에 깊은 내력을 가진 명성있는 돌들이 나오리라고 보기 때문인데, 실로 혼자만 갖고 있다는 이유로 인하여 우리 나라에 만인이 공감하는 명석이나 전래석이 나타나지나지 않는 것이다.  묵묵히 물살에 씻기고 있는 돌들을 우리가 주워다가 혼자 관상하는 완고한 자세보다는 동적인 자세로 발전시켜서 우리들의 돌을 역사와 전통이 붙어 있는 명품으로 나타내기 위한 노력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1973년 8월 〉  이 글은 1980년 12월에 발행된 애석가들의 수필집 일생일석(一生一石)에서 발췌한 것으로 저작권에 문제가 있다면 바로 삭제 조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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