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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 600개 수석으로 ‘청명상하도’ 재현(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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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17-07-14 06:21 조회 22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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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언론에 따르면, 자오즈창(趙志強)은 허베이성 바오딩(河北省保定)시의 수석 수집가다. 최근 그는 2년에 걸쳐 ‘청명상하도’ ‘수석판(奇石版)’을 제작해 냈다. ‘청명상하도 수석판’은 길이 7.5미터, 너비 0.7미터로서 수석으로 ‘청명상하도’를 그려낸 작품은 중국에서는 최초라고 언론은 전했다.
 
자오쯔창의 작업실은 구석마다 모두 가지각색의 기이한 형상의 돌덩이가 가득 차서, 실내에는 좁다란 ‘인도’만 남았다고 한다. 지저분한 작업대에는 풀(膠水), 돌덩이 등 각종 재료가 널려 있다. 자오쯔창은 자기는 방안에 돌덩이가 몇 개가 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자오쯔창은 기자에게 알려 주었다. 그는 8년 전 영국에 시찰을 갔다가 길에서 돌덩이를 파는 노점을 보고 호기심에 운석(隕石)과 국석(菊石) 화석을 샀는데 이때부터 서서히 수석에 흥취를 갖게 됐고 나중에는 푹 빠졌다고 한다. 수석을 찾아내 소장하기 위해 그는 10년이나 종사했던 전문매니저 직을 사직해 버렸다.
  더 보기 >>>>
 
자료: NTD Television & www.ntd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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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 62건 1 페이지
  • 62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1-10 조회 880
    "수석을 통해 한국의 전통사상과 문화를 타인종과 한인 2세에게 알리고자 한 것입니다." 올해로 수석 입문 40년을 맞은 어바인 상록회 김준유(72) 회장이 밝힌 수석 서적 발간 이유다. 김 회장은 미주 한인사회에서 보기 드문 수석 관련 책자를 내 바 있다. 그는 오랜 기간 수집한 수석 가운데 엄선한 100점의 사진에 해설을 곁들여 올 컬러판 '수석: 한국의 전통 콘셉트(Viewing Stones: Korean Classical Concepts)'를 출간(Blurb 출판사·2010년)했다. 김 회장은 책자를 통해 자신의 1호 애장품인 9인치 높이의 단석(돌 한 개) '마스터 스톤'을 소개한 것을 비롯해 수석마다 선비정신을 비롯한 한국 전통사상과 역사, 풍수지리 등을 대입시켜 설명했다. 자연이 만든 예술품을 발견하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는 김 회장은 "수석은 2000년 전 중국서 시작돼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파됐지만 각 나라별 특색이 확연히 구분된다"면서 "기이한 모양을 중시하는 중국 수석과 조경용으로 수려한 모양을 중시하는 일본 수석과 달리 한국 수석은 형(形)을 보고 기(氣)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더 보기>>>>출처, THE KOREA DAILY …
  • 61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1-10 조회 1030
    미국서 발품 팔며 본격적인 탐석여행…욕심 버린후 수석 자태 눈에 들어와  “제 성이 석(石)씨입니다. 돌을 사랑하고 모으는 수석의 취미는 태어남과 함께 운명 지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수석이라는 고매한 취미를 즐기는 석상길(68·시인) 씨가 돌을 닮은 미소로 말한다. 수석(水石)은 물의 힘에 의해 자연적으로 형태와 색깔이 형성된 자연석을 찾아 모으며 감상하는 취미를 말한다. 자연을 축소해 담고 있는 돌 한 덩이를 찾아 나서는 길은 자연으로 떠나는 오디세이요, 자연과 벗 하며 마음의 평화를 갖게 한다. 현재 수석은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점차 그 인구가 늘고 있는 취미 활동이다.석상길씨가 처음 수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68년. 첫 직장을 잡아 일하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직장 근처 수석 가게의 돌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후 양수리 국수리 남한강 금강 일대 등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돌을 찾아 다닌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36년 전 미국으로 건너온 이후 그의 탐석 무대는 더욱 넓어졌다. 근교의 호수와 강 주변은 말할 것도 없고 애리조나 유타 알래스카까지 그는 다리품 팔기를 마다하지 않고 돌을 찾아 다녔다. 한 나절에서 달포에 이르는 탐석 여행은 아무래도 혼자 떠나는 게 제격이다. 여러 명이 함께 가면 마음이 산란해져서 돌이 눈에 뜨이질 않기 때문이다. "돌은 자신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옵니다. 돌의 언어를 가까이 하면 태고의 언어를 들을 수가 있는 것이죠. 범인들이야 돌 앞에 멈춰서는 일이 없지만 세월을 서둘러 살지 않고 돌에 이끌린 사람들은 평생 돌은 놓지 않습니다." 북가주의 엘 강 근처는 그가 돌을 찾기 위해 자주 찾는 장소. 까만 바탕 한 가운데 하얀 색 물감으로 그림이라도 그려 놓은 듯 선명한 춤추는 여인의 이미지가 담긴 돌을 주은 곳이 바로 여기다. 그는 마치 정으로 쪼아 조각을 하거나 물감으로 색조를 입힌 것 같은 기암괴석들을 제법 소장하고 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까만 색 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원산평원의 형상이다. 아이 못 낳는 여인들이 아침저녁으로 문지르며 사내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빌었을 성 싶은 남근 모양의 돌을 바라보며 진정 자연만한 조각가가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조가비 화석이 박힌 돌은 사군자 가운데 국화를 그려놓은 것처럼 화사하다. 지난 번 탐석 여행에서 주워온 붉은 색의 돌을 솔로 문지르며 그는 자랑스레 말한다. "붉은 색 바위가 가득한 세도나가 좋은 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알고 계시죠? 붉은 색 돌은 부와 행운 사랑과 지혜를 가져다 준다고 알려져 있어요."이렇듯 어렵게 채석한 돌이지만 워싱턴 DC의 국립 수석 수목원 내 분재와 수석 박물관에서 수석 전시를 마친 뒤에는 남가주의 바닷가에서 채석한 산수 경치 수석과 사막에서 주워온 바닷가 절벽 모양의 수석 두 점을 선뜻 기증하기도 했다. 좋은 수석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눈에 돌들이 쏙 들어왔던 것은 아니다. 찾으려는 욕심이 너무 크던 시절 돌은 꼭꼭 그 모습을 숨겼었다. 돌과 더불어 노닐며 돌과 내가 하나임을 깨닫기 시작하던 때부터 돌은 그에게 보석 같은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탐석 여행 때마다 물건을 건지는 것은 아니지만 명산명석이라 했다. 산수가 좋은 곳은 그 산수를 빼어 닮은 수석이 많이 발견된다. 설사 돌 하나 못 줍고 온다 할지라도 그 빼어난 산수를 눈이 시리도록 즐기고 오니 허탕친 것만은 아니다. 돌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에게 있어 돌만큼 좋은 시의 소재는 없다. 돌을 찾으러 길을 떠나고 캐온 돌을 닦은 후 돌과 함께 놀며 쓴 그의 시들은 돌을 닮아 겸허하며 둥글둥글하다. 돌과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그 누구라도 돌과 같은 도의 경지에 올라있게 될 터이다. 돌과 오래 벗해 온 그는 이제 돌이 건네 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렸다. 강가와 사막을 떠난 돌이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 그는 요즘 캐온 돌을 다시 그 돌이 속해 있던 자연에 돌려주는 방생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들처럼 돌도 제 자리에 있을 때라야 비로소 숨을 쉬고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그가 돌과 벗하며 체득한 지혜이다. 스텔라 박 객원기자경치가 좋아야 ‘명품’ 많아산수가 좋은 곳은 그 산수를 빼어 닮은 수석이 많이 발견된다. 강이나 호수 등 물의 흐름이 바위를 깎아 놓는 곳에 좋은 돌들이 많다. 가까이로는 앤젤레스 포리스트 주변의 계곡, Lake Isabella, 북가주의 Ell River, Kern River, Three River 등이 좋은 채석장이다. 국립공원과 국유림에서는 채석을 할 수 없다. 채석을 위해 따로 라이센스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주차 패스를 눈에 보이도록 매달아 놓아야 한다. 수석에 필요한 장비는 긴 드라이버, 무게를 받쳐주는 장치가 딸린 배낭, 솔, 헝겊, 돌을 고정시켜주는 나무 받침대 등.자료출처, 중앙일보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24957 …
  • 60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20 조회 1131
    자연의 미가 살아있는 수석을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한국수석포항박물관’이 23일 호미곶 새천년기념관에 개관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 이병석 국회의원, 박명재 국회의원, 경상북도 이인선 정무부지사, 박승훈 포항시의회 부의장을 비롯해 한국수석협회 회원 및 관광객 등 200여명이 참석해 개관을 축하했다.  ‘한국수석포항박물관’은 2013년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새천년기념관 3층을 리모델링해 마련됐으며, 전시 작품은 한국수석회 회원들이 오랫동안 정성과 땀으로 수집한 소장품 450점과 기타 관련도서 등을 기증한 것이다.  시는 이번 수석박물관 개관을 계기로 새천년기념관 2층의 화석박물관과 더불어 또 하나의 지역문화공간을 창출하게 됐으며, 향후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수석을 선보여 포항시만의 차별화된 관광 상품으로 만들 방침이다.더 보기 >>>자료출처: 포항 인터넷 뉴스  www.phinews.co.kr…
  • 59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9 조회 1121
     박물관 세우는 백양사 주지 지선 스님30여 년 간 전국 산하를 누비며 정성스레 모은 수석이 빛을 보게 돼 기쁩니다."전남 장성군 백양사 주지 지선(60) 스님이 수석 박물관을 세운다.20억원(지방비 포함)을 들여 백양사 옆 1000여 평의 부지에 지하.지상 1층(연건평 100평) 규모로 짓는다.다음달 착공해 내년 중순 문을 열 계획이다.박물관 옆 부지에는 공연은 물론 미술.조각 등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문화공간도 꾸밀 예정이다.지선 스님은 그동안 수집한 수석 3000여 점을 이 박물관에 전시할 생각이다.현재 절 이곳저곳에 어지럽게 보관돼 있는 이들 수석 중에는 일본.중국.미국 등 15개 국과 국내에서 수집한 부처.달마 형태를 갖춘 희귀 무늬석 500여 점도 포함돼 있다.그는 "나에게는 수석을 모으는 것이 수행의 한 방법"이라며 "100일 수행을 한 뒤 경기도 남한강에서 주운 동자승을 닮은 수석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지선 스님이 수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3년 제주도 관음사 주지로 있을 때부터다.그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냇가에서 띠 두른 돌을 주워오라고 해 이것들을 가마솥에 삶아 그 물을 마시고 목욕을 했던 기억 때문에 수석 수집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80년대 국내에서 처음으로 수석동호인 모임인 '한국수석회'를 창립한 그는 "깊은 산중에서 돌을 모으다가 간첩으로 오인받기도 했고, 바닷가에서 탐석하던 중 파도에 휩쓸려 죽을 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스님 신분으로 70~80년대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던 그는 "수석 취미가 있었기에 혹독했던 군사정부 시절을 버텨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당시 민통련 부의장을 맡고 있던 그는 전국민족연합 등을 창립했으나 자금이 없어 자식처럼 아끼던 수석을 팔아 조직 운영비를 마련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치 돈 때문에 자식을 팔아먹은 부모처럼 죄스런 심정이 된다고 했다.지선 스님은 수석을 돈으로만 보려 하는 요즘 세태에 불만을 토로한 뒤 "수석에는 '돌(石).도(道).돈(錢).독(毒)'으로 가는 여러 갈래가 있다"면서 "잘하면 도를 깨닫지만 잘못하면 돌이 돈이 되고 독이 된다"고 지적했다.백양사=서형식.양광삼 기자자료출처: 불교포커스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35862 …
  • 58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8 조회 1352
     20년 넘게 수석 채집을 하고 있다는 박종빈(61·강서구 공항동), 문성자(56)씨 부부의 집은 현관 입구부터 여느 집들과 달랐다. 온통 집 안을 차지한 기기묘묘한 형상의 수석들에 밀려 가재도구는 뒷전. 거실이며 안방, 작은방 할 것 없이 온통 돌로 채워져 있다. "윤기 반질반질한 이 깜장 돌이 오석이고요, 초콜릿 색깔 나는 이것은 초코미석, 저기 깜장 바탕에 흰 줄이 들어가 있으면 미석으로 분류하죠." 남편 박씨보다 앞서 수석에 입문했다는 아내 문씨가 설명을 붙인다. 어려서부터 예쁜 돌만 보면 호주머니에 넣었다는 문씨, 결혼 후에도 틈틈이 수석을 찾아 바닷가와 강가를 찾아다녔단다. 처음에는 그깟 돌 뭣에 쓰냐며 시큰둥했던 남편도 어느새 아내의 수석 사랑에 빠져들었다. 지금은 수석을 고정시키는 받침대인 좌대를 손수 깎으며 함께 채집에 나서고 있다.언젠가부터는 동네에 입소문이 나 수석 구경을 오는 이들이 늘었다. 이들을 위해 부부는 종종 이웃과 함께 조촐한 수석 감상회를 열기도 한다. 4년 전부터는 수석 동호인들과 교류를 시작해 계절 따라 감상회를 열고 관련 정보를 나누고 있다고. 수석을 구경하려고 집을 방문한 이들에게 부부는 수석의 가치를 인정해준 답례로 수석을 선물하는 것도 잊지 않는단다.문씨가 탁자에 놓인 수석들에 물을 흠뻑 뿌리기 시작했다. 한껏 물을 머금은 수석은 문외한의 눈에도 해안가 동굴을 떠올리게 했다. 이런 게 수석을 감상하는 재미일까?더 보기 >>>>행복플러스 염동우 기자 ydw2801@chosun.com[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8/2012100801496.html…
  • 57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8 조회 1655
     제주돌문화공원에 화산 활동과 풍화 작용이 빚어낸 제주의 수석을 볼 수 있는 상설전시장이 생겼다. 제주도 제주돌문화공원관리사무소는 돌문화박물관(면적 3천200㎡) 안에 형성전시관, 돌갤러리와는 별도로 430㎡ 규모의 '제주의 수석' 상설전시관을 설치해 27일 개관했다. 돌문화공원은 옛 탐라목석원 백운철 원장이 제주 곳곳에서 수집해 기증한 270여점의 수석 가운데 23점을 엄선해 전시관에서 상설전시한다. 이들 수석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된 수석은 특정한 사물이나 산수를 연상시키는 작품이 아니라 감상하는 사람의 심정이나 보는 방향, 연령대, 개인의 경험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과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 위주로 구성됐다. 제주의 수석은 화산 활동 과정에 땅속에서 솟아난 고온의 마그마가 지표에서 식어 형성된 암석이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형상석으로 질감과 모양이 독특하다. 돌문화공원은 4천900여점의 제주 자연석을 소장하고 있다.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을 주제로 조성 중인 제주돌문화공원은 326만9천여㎡에 돌박물관, 돌문화전시관, 야외전시장, 전통초가 마을 등을 갖춰 제주 돌 문화와 제주인의 생활상 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2020년까지 추가로 설문대할망 전시관, 자연휴양림, 승마체험지구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연합뉴스 문의)돌문화공원관리사무소 운영지원과 710-7736. 자료출처: https://www.jeju.go.kr/news/bodo/list.htm;jsessionid=XZcK1Z4tS3owau1Mj2CaGkllE1a0Sq4kd9QnbGj18Mc8jeBEgn8bSVSMlO8gOMZz.was1_servlet_engine1?page=1758&_layout=playout&_view=print&act=view&seq=535071…
  • 56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7 조회 1119
     위치 : 경남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495외문의/안내 : 055-749-2114지정현황 : 천연기념물 제390호 / 1997년 12월 30일 지정 진주 유수리의 백악기 고환경과 공룡화석산지는 진주 남강땜의사천만 방수로 바닥지층에서 발견되었다. 물줄기인 가화천 강바닥에서 발굴되었다. 약 1억년 전에 생성된 지층으로 넓이 150m, 길이 2㎞의 화석산지층에서는 지골화석과 발가락 뼈, 좌골화석 등 100여 점에 달하는 공룡화석이 발견되었다. 또한 오래된 토양층이나 나무그루터기 화석, 화석 숯, 각종 중생대 생물의 생활흔적화석 등 다양한 화석들도 발견되었다. 진주 유수리의 백악기 고환경과 공룡 화석산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공룡뼈 화석조각이 발견된 곳으로 공룡의 서식환경과 화석화 과정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므로 천연 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면적 - 268,575㎡  관리자 정보진주시청 : TEL. 055-749-2114관련 홈페이지진주 문화관광 http://tour.jinju.go.kr 자료 출처: 한국관광공사 …
  • 55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7 조회 923
     자연석에서 수석의 조건요소를 다 갖춘 돌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렵다. 수석열풍 초기엔 그런대로 표준요건을 갖춘 돌들이 산출되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희소해져 급기야는 조석이 그 틈을 파고들어 수석계를 어지럽히는 현상까지 발생되었다. 문양석은 문양을 즐기는 돌로 형이나 표면은 다듬을 수 있으나 문양자체의 변형은 불가능하다. 간혹 중국 돌에서 돌 가루에 문양을 교묘하게 넣어 연마한 돌이나 화학약품으로 처리된 문양석이 나돌고 있으나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본다면 쉽게 분별할 수 있다.  엄밀히 파고든다면 각 장르의 모든 예술은 그 자체의 최상일 뿐 완벽이란 없다. 돌밭에서 한 점 돌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다 볼만한 관점이 잡히면 연출(좌대나 수반)의 방법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돌 꼴이 부족하더라도 내용이 그런대로 구도가 잡혀있다면 연출로서 최대한 관점을 표출해야 한다. 돌은 표출된 그 자체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표출된 내용에 몰입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그 연상되는 또 다른 환경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수석 본연의 실체는 사라지고 허상의 세계에 실체와 같은 동영상이 자리한다. 그 세계에 빠져드는 본인만 느낄 수 있는 영역이다. 상기 돌도 돌 꼴이 좋지 않으나 그런대로 구도가 잡혀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돌이다. 햇볕 따사로운 봄날 강 언덕에 앉아 봄을 만끽하는 소녀와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옛 선비의 풍모가 담긴 돌로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돌이다. 틀은 알되 너무 격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연출의 묘미를 최대한 살려 즐기는 것이 수석을 즐기는 생활이다. 석상에서 돌을 매입할 때도 연출되어 있는 돌이 꼭 그 상태로만 보아야 한다는 제약이 아니다. 본인 취향에 맞게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연출하여 즐겨볼 수 있는 것이다. 틀에 짜맞추다 보면 오히려 더 어색한 돌이 되는 경우도 많으니 관점을 살려 돌과 관상자가 동시에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틀은 표준이며 불변의 잠금 장치가 아니다. (雲霞)           …
  • 5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4 조회 410
     공룡시대 석회암이 빚은 걸작  공룡의 땅,경남 고성은 중생대 백악기 때 호수퇴적층이 분포하던 지역으로 최근 공룡 엑스포를 개최하는 등 명실공히 세계적인 공룡유적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룡시대 우리나라의 기후는 온난하고 건조한 가운데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는 환경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간간이 홍수로 인해 호수의 물이 불어나고,또 뒤이어 가뭄이 계속되면 주변 평원에 살던 공룡들이 갈증을 견디지 못해,혹은 진흙 목욕을 즐기러 새끼공룡들과 함께 호수를 찾았을 것이다. 그때의 흔적이 오늘날까지 퇴적층에 보존되어 수많은 공룡 발자국 화석을 남겼다.  공룡시대의 홍수 때 퇴적된 모래와 진흙은 오랜 가뭄으로 인해 호수바닥이 드러남에 따라 석회질 퇴적층으로 변하였다. 그런데 공룡시대의 석회질 암석이 오늘날 수석수집가들이 애호하는 '고성용석'(사진)이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성용석'은 배둔리 하천에서 처음 탐석되었으며,고성의 야산과 충무의 바다 밑에서만 나는 우리나라 특유의 수석이다. '고성용석'은 산수경석(山水景石: 산수화와 같은 경치를 자아내는 수석)으로,'땅속에서 파낸 수석'이라는 의미의 토중석(土中石)의 일종이며 강이나 하천에서 탐석되는 일반적인 수석과는 구분된다.  원석은 석회질 암석 외부에 변질된 암석과 흙이 붙어 있어 그 속 돌의 형상을 추측하기 어려우나,손질 후 생김새가 마치 한 폭의 산수 동양화를 보는 듯하고,금강산을 옮겨 놓은 것과 같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고성의 수석은 지질시대(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석회질 퇴적암(진동층)이 지열로 인해 변질되고,지표근처에서 암석의 깨진 틈과 층리면을 따라 산성의 지하수가 스며들어 석회암을 차별용해 시킴으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고성용석'은 8천만년 전 공룡시대 지층이 지하수와의 신비한 조화로 빚어낸 천연의 걸작품으로,그 동안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수석자원이 고갈되고,자연환경이 훼손되는 등 문제점이 많았다. 더 늦기 전에 이 지역을 지질명소(Geologic Interest: 관광명소와 대응되는 용어로서 지질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로 지정하여 고성의 수석을 보존하고 가치를 높여야 할 것이다. 박맹언 부경대 환경지질과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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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4 조회 517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에서는 2012 문인들의 취미 수집전의 하나로 석동 박이도 시인의 수석과 시의 풍경 전시회가  많은 문인과 수석인 화가가 참석한 가운데 2월 17일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석동 박이도 시인께서는 1959년 자유신문과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셨고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불꽃놀이><민담시집><빛과그늘〉등 다수 시집을 출간 하셨습니다. 수석은 고 박두진 시인 집에 방문하면서 부터 관심을 두게 되었으며 75년부터 충주댐 담수 전까지 열심히 탐석 다니셨습니다. 무엇인가를 한정 짓고 단정해 버리는 경솔을 범하는 것 같아서 탐석한 수석에 이름붙이기를 꺼렸습니다. 수석감상의 기본을 1) 질감2) 형상3) 색채 4) 무흠이며 이 네 가지가 탐석의 조건이라 하셨습니다.  박이도 시인의 ’수석과 시의 풍경’은 시와 수석을 시서화단의 지인들이 수묵화와 서화로 빚은 작품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로 시가 주축이 되고 수석과 서화가 함께 어울린 종합 예술의 전시회였습니다.  이는 11년 8월 20일 개최한 고미술과 수석의 조화를 시도한 무이회전 ‘선비의 사랑방 풍류’ 와 11년 12월 13일 개최하였던 낙헌 장활유 장로의 수석으로 복음을 전하는 ‘수석으로 입는 성서전’ 등의 전시회가 수석과 다른 장르 예술과의 접목을 시도한 좋은사례입니다. 반드시 수석 전시회라 하여 수석만 주로 전시하거나 꼭 뛰어난 수석만을 전시히는 것에서 탈피하여 앞의 사례와 같은 다양한 시도가 필요 하다고 봅니다.  수석을 문학이나 예술품과 함께 연출하여 전시한다면 수석의 양이 많지 않아도 되고 소박한 수석이라도 전시의 품격도 올리며 다양성도 시도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최근 만나는 수석인들은 수석에 대해 높아지는 안목과 4대강 사업에 따른 강석 대부분 산지가 사라진 이유도 있겠지만,우리나라 수석계가 과거 일본처럼 점차 침체되어 가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마침 이런 시기에 수석과 시서화에 걸쳐 종합적으로 열려서 침체한 수석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즉 수석을 시서화 고가구 예술품과 함께 동등하게 연출 전시한다면 적은 수석으로도,소박한 수석으로도 전시회로서 흥행할수 있다고봅니다. 수석인도 꼭 수석만 보러 전시장에 다닐 것이 아니라 다른 예술품 전시장에 따로 갈 필요 없이 함께 감상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종합 전시회에도 마음이 열려 즐겁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박이도 시인의 수석과 시의 풍경 전시회는 3월 30일까지 장기간 개최되므로 언근의 수석인께서는 잠깐 시간을 내어 수석과 시와 예술이 함께 어울려 문화의 하모니를 연출하는 전시장을 참관하여 감상하면 안목의 폭을 넓힐 수 있어 좋을 것입니다. 박이도 시인의 수석 시서화전 전시기간 : 2012년 2월 17일 rv3월 30일 전시시간 : 오전 11시 ~ 오후 5시 장  소 : 서울 문학의 집 제1전시실 주  최 : 문학의 집 · 서울(02-778-1026) 후  원 : 서울특별시, 유한킴벌리   자료출처: 수석의 미 2012년 3월호월간 수석의 미 구독신청http://www.suseok.net/bbs/board.php?bo_table=reference&wr_id=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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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4 조회 411
    근대 한국의 수석문화  <1960년대 - 수석문화의 태동기> 조선시대 화려했던 애석 문화는 일제 식민지 시대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오랜 시간 사실상 단절돼왔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에 들어서 서울과 부산에서부터 다시 수석 문화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60년대는 한국 수석문화의 태동기라고 볼 수 있다.  1966년 여름에 서울에서 故 韓基澤 선생의 주도로 옛 선비들의 애석 취향을 이어받은 노년층들이 石友會라는 단체를 결성한데 이어 66년말에는 文龍澤씨를 중심으로 대한수석회가 부산에서 결성이 되었다.그 이듬해 4월과 11월에 문용택씨와 한기택씨의 개인 수석전이 부산과 서울에서 개최되는 등 처음으로 수석전시회도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68년에는 서울에 최초로 ‘돌바위’사가 운영을 한 ‘고사통’이라는 수석가게가 등장을 했고 이어서 부산, 대구, 광주, 울산 등지에서도 수석 가게가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처럼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수석문화가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애석가들의 신문을 통한 기고와 수석 관련 출판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만 해도 수석 인구는 매우 적은 편이었으나 장준근 선생이 수석에 관한 여러 책자를 발간한 것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수석인구의 저변확대가 시작되었다. 특히 장준근 선생이 71년에 쓴 ‘돌의 멋: 수석취미의 세계’는 최초의 수석 입문서로서 수석인구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시인이면서 애석가였던 朴斗鎭 선생은 ‘수석열전’이라는 시집까지 발간하기도 했다. 각 지역별로 동호회 결성이 활기를 띠었던 70년대를 거쳐 80년대 들어서면서 수석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수석 인구가 100만명으로 추산될 정도였으며 웬만한 집에는 한 두 개의 수석이 집안을 장식할 정도로 붐을 일으켜 취미 중의 취미로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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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4 조회 423
     이정애 전 한인수석협회장“수석에는 태고의 신비가 담겨 있답니다”재활 코디네이터인 이정애(미국명 정 크루거)씨는 수석 수집가다. 90년대 초부터 수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다 됐다.1년에 3~4차례 수석 채집을 위한 여행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셔먼옥스에 있는 집은 수석들로 가득 차 있다. 지난해에는 한인수석협회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이씨가 수석에 관심 갖기 시작한 건 남편 단 크루거씨와 결혼하면서부터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정애씨는 수석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지만 남편과의 데이트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수석을 접하게 됐다.아이오와주 출신 남편은 어릴 때 할머니로부터 모든 사물은 ‘정신’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고 30대 중반 이후 아시아 문화에 매료되면서 수석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전문가였다.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이제는 정애씨도 남편 못지않은 수석 전문가가 다 됐다. 처음에는 수석보다 남편과 함께 하는 채집 여행이 더 좋았지만 지금은 수석의 묘미에 흠뻑 빠져 있다.정애씨는 “돌은 귀를 잘 기울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오며 가까이 하면 태고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는 앙드레브르통의 수필을 인용하며 “수석에는 태고의 신비가 담겨 있다”며 수석 예찬론을 폈다.   문의 (818)515-6130/(213)507-4796자료출처: 미주한국일보  http://www.koreatime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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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4 조회 416
    희귀암석 꽃돌을 천연기념물로 한반도에는 희귀한 암석이 많다. 그러나 그 희귀성과 상품성 때문에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희귀 암석이 사라져 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여러가지 꽃무늬를 가진 꽃돌이다. 꽃돌은 화산암 중에서 구과상 유문암에 속하는 암석으로 국내에서는 경남 양산 원동, 경북 의성 금성산, 전남 영광 법성포, 전북 정읍 내장산, 전북 고창 등지에 분포돼 있다. 특히 경북 청송과 영덕 지역의 주왕산 국립공원 북쪽 산자락에서 산출되는 구과상 유문암은 무늬가 매우 크고 모양과 색상이 다양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이 지역의 꽃돌은 국내 수요의 90%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에까지 알려져 있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에서도 꽃돌이 발견되지만 꽃돌 하면 한국을 생각하고 특히 청송 꽃돌을 연상하게 된다.  꽃돌 채취의 대상이 되는 구과상 유문암은 약 7000만년 전 지하에 있던 뜨거운 마그마가 퇴적암 속의 단열대를 따라 맥상으로 관입한 암맥이다. 꽃무늬 결정은 마그마가 심하게 냉각될 때 핵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생성된 것으로 크기가 수㎝에서 수십㎝로 매우 다양하다. 모양도 국화 해바라기 모란 장미 카네이션 채송화 등 10가지 이상의 다양한 꽃무늬를 나타낸다. 크기와 색상에 따라 더욱 더 세분할 수도 있다. 즉 국화석만 하더라도 형태와 색상에 따라 열 가지 이상이 있다. 구과상 유문암은 7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해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채석된 원석을 여러가지 형태로 연마해 국내외로 판매한다. 그러나 난개발로 인해 지금은 원석이 거의 고갈된 상태이다. 워낙 상품가치가 있기 때문에 귀중한 자연유산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문화재는 한번 망가지거나 고갈되면 영원히 재생할 수 없다.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고갈되기 전에 보존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머지 않아 형체조차 없어져 흔적과 기록으로만 남을 것이다. 당국은 희귀한 구과상 유문암에 대해 보존구역을 설정하고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는 지금까지 개발된 원석과 상품화한 꽃돌을 사들여 학습관이나 전시관을 설치해야 한다.  황상구(안동대 교수·지질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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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4 조회 862
    난징(南京)에서 열린 '기암괴석(奇岩怪石)' 경매에서 돌 하나가 무려 580만위안(9억9천6백만원)에 낙찰돼 화제가 되고 있다. 난징에서 발행되는 양쯔완바오(扬子晚报)의 20일 보도에 따르면 전날 난징에서 각종 기암괴석 97개를 모아놓고 경매를 열었는데, 그 중 반드르한 윤기와 반투명 황색이 특징인 이른바 '전황석(田黄石)'이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580만위안에 낙찰돼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전황석'은 중화민족의 보배라 불리는 수산석(寿山石)의 일종으로 중국에서 쓰이는 인감 재료 중 최고로 쓰이는 돌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옛말에 황금을 얻기는 쉬우나 전황을 얻기는 어렵다는 뜻인 '황금이득, 전황난구(黄金易得, 田黄难求)'란 말로 '전황'의 경제적 가치를 높게 평가해왔다. 이날 선보인 '전황석'은 높이 17cm, 무게 1,560g으로 일반 전황석보다 2~3배 이상 큰 사이즈를 자랑해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편 수산석은 푸젠(福建)성 민허우(闽侯) 서우산(寿山)에서만 생산되는 유명한 돌로 인감을 만드는데 주로 쓰이며, 현재까지 알려진 종류만 110여종에 이른다.  [온바오 강희주]ⓒ 중국발 뉴스&정보-온바오닷컴(www.onbao.com) 자료출처: 온바오 www.onb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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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수석넷 작성일 07-14 조회 475
     일본 최초의 수석은 백제에서 보낸 영산석이다  백제는 무왕12년(612)에 승려들을 통하여 일본의 추고천황에게 영산석이란 수석을 선물하였는데 이때 연출기구로 박산향로형 수반을 같이 보낸일이있다. 이 영산석(靈山石).이 바로 일본수석의 시효가 된다.백제문화의 절정기를 이루던 무왕(武王 12(612)년에 일본 땅으로 건너간 관륵(觀勒)이라는 스님은 『일본불교략사(日本佛敎略史)』에 의하면 백제 무왕2(일본 추고천황 10)년, 그러니까 602년에 처음 일본으로 들어간 것으로 되어있다.일본 세천류 분석 상전인증(日本細川類盆石相傳印證) (日本樹石1968년 2월호)내용:우리나라(일본) 수석의 시작은 인황 추고천황 20년대에 백제국에서 사신이 건너와 역서(歷書)를 헌납할때 그 가운데 박산향로가 포함되어있었다. 그 모양은 상부는 불기(佛器)같고, 속에 향을 채우며 아래쪽에는 배모양같이 되어있어 열탕을 넣는다.맨 꼭대기에는 분이 있고 그 가운데 영산을 닮은 산이 놓여있다.일찍이 없던 무류의 명석(銘石)이었다. <<일본서기>>권 22 그 7년 후 609년에 나라 지방에 ‘아스카사(비조사 飛鳥寺)’가 완공되었는데, 이때 백제의 승려 열한 명이 일본에 들어갔다. 3년 후(612년)에 다시 관륵 스님이 일본에 들어갈 때는 백제의 역본(曆本)과 천문지리서(天文地理書), 둔갑, 방중술 등의 서책과, 선가사상(仙家思想)을 수양하는 데 이용되었던 수석(영산석 靈山石)을 박산향로형수반(博山香爐形水盤)에 올려서 전달하였다고 한다.자료 출처: 한국애석문화발전연구소 구산(九山) http://blog.daum.net/gusan0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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